민생 저해 기업, 대규모 담합 철퇴 내려
식품업계 제품 가격 인하 이끌었지만
실제 물가안정 체감까지 이어지지 않아
"정부·기업 협심해 근본 해결책 찾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경남 김해시 외동전통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았다. 그간 민생 경제를 저해하는 식품업계의 담합 행위에 철퇴를 내렸고, 대내외 악재로 장기화 되는 고물가 기조 속 식품 기업들에 가격 인상 억제를 가하며 제품가격 상승을 억눌렀다.
그러나 서민이 체감하는 밥상물가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한 현금성 지원에 나섰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현장의 평가가 많다. 경기 불황의 구조적 문제를 기업 규제와 단발성 현금 처방 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식품 기업의 대형 담합 행위를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체적으로 ▲밀가루(담합 규모 5조8000억원·과징금 6710억원) ▲설탕(3조2000억원·3960억원) ▲전분당(6조2000억원·7311억원 추정) ▲돼지고기(과징금 31억6000만원) ▲계란(5억9000만원) 등이다.
이 같은 공정위의 철퇴로 원자재 공급가격이 하락하면서 가공식품의 가격도 함께 떨어졌다.
세부적으로 설탕은 최대 26.5%, 전분당 최대 20.5%, 밀가루 최대 8.1% 하락했다. 이에 따라 식품 기업들은 ▲라면(최대 14.6%) ▲아이스크림(13.4%) ▲빵(6%) 등 먹거리 출고가를 하향 조정했다.
정부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품 원자재 독과점 기업들의 '카르텔'을 해체해 가공식품 등에 대한 가격인하를 견인했다는 평가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엄포는 단순 제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공정위가 담합, 사익편취 등 중대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기업에 사업 매각 등을 강제하는 '구조적 조치'를 도입키로 하면서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구조적 조치는 경쟁 제한 문제를 해소하거나 불공정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기업 분할, 지분 매각, 사업 매각 등을 국가가 명령하는 제도로 기업 소유와 지배구조에 정부가 개입할 근거를 남겼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공정위는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사국 부활도 공식화했다. 이들은 민생 밀접 독과점 부문에 걸친 중대법 위반 등 사건 조사를 전담한다. 1996년 대기업 불공정 행위 조사를 전담했지만, 당시 정권 입맛에 맞는 조사만 한다는 비판에 2005년 폐지된 바 있다.
이처럼 정부가 공정위라는 '칼'을 쥐고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품목을 취급하는 기업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가하는 것은 결국, 민생을 어지럽히는 요소를 원천 차단해 서민 밥상물가 안정을 도모하겠단 취지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강경 태세에도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좀처럼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19.37(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2.6% 올랐다. 이는 2024년 7월(2.6%)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자,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2.0%를 넘어선 수치다.
생산자물가도 전월 대비 2.5% 상승하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정부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초반으로 안정적이라곤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가 이미 전체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물가 상승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졌다. 장기화되는 경기불황에 고유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 현상이 겹치면서 서민들의 지갑이 쉽사리 열리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출범 1년 만에 두 차례에 걸쳐 민생회복지원금과 고유가피해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을 통해 내수 진작을 도모했다. 예산 규모만 19조원 수준으로 편성됐고, 모두 세금으로 집행됐다.
현장에선 '마른 하늘의 단비'라는 호평이 있지만, 고물가와 경기 불황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가 지급하는 지원금은 수요 진작을 위한 '단발성 정책'에 불과할 뿐, 경제 성장을 위한 중장기적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마트를 찾은 여행객들이 과자, 라면 등 K푸드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K-푸드의 글로벌 위상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를 취급하는 식품업계도 난관에 봉착했다.
앞서 정부는 K-푸드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비전 아래 수출 성장 총력 지원 및 2030년 수출 목표를 210억 달러로 설정해 관계부처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는 '수출 지원체계'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포장재 수급 불안·고환율·고유가·원부자재 가격 급등 등 원가 상승을 부추기는 대내외적 악재들이 곳곳에 도사리는 가운데, 정부의 가격 인상 억제 정책에 더해 각종 규제까지 겹치며 그야말로 사면초가 형국이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라면을 살펴보는 모습.ⓒ뉴시스
업계에선 중동 전쟁 여파로 늘어난 원가 상승부담을 정부의 가격인상 억제 기조 속에서 계속 버티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가 상승분의 누적은 결국 가공식품과 외식가격 전반에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시간이 지날 수록 늘어나는 원가부담에 정부 규제까지 이어지면서 식품 제조사 입장에서는 생산을 할 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토로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1년은 물가안정을 위해 일면 노력하는 듯 보였으나 경기불황, 고물가 현상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식품업계의 담합을 엄단한 것은 칭찬 받아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기업을 무조건 옥죌 게 아니라 자유시장 체제 하에서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현 상황에 어떤 대책이 최선일지, 기업의 고충은 무엇인지 등을 듣고, 어떻게 해야 국민 삶의 개선으로 이어질 지에 대한 방향을 조율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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