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에 고배 마셨던 고려아연 유증, '미국 제련소 카드'는 통할까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12.16 16:55  수정 2025.12.16 16:55

작년엔 철회, 이번엔 재도전…달라진 유증 방식

금감원 변수는 해소, 남은 쟁점은 ‘법원 판단’

영풍·MBK “경영권 방어용 유증”…가처분으로 맞불

고려아연 “미국 공급망 전략·재무 안정성 위한 선택”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데일리안 박진희 디자이너

지난해 유상증자 철회라는 ‘쓴맛’을 봤던 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 건설을 앞세워 다시 증자 카드를 꺼냈다. 이번에는 금융당국 문턱은 넘겼지만, 영풍·MBK파트너스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유상증자의 성패는 법원 판단에 달리게 됐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번 고려아연 유상증자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진행돼 증권신고서 제출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추진됐던 일반공모 유상증자와 달리,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심사하거나 정정 요구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다.


고려아연은 전날 미국 테네시주에 핵심광물 제련소를 건설하기 위해 약 11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와 민간 투자자가 참여하는 합작법인(JV)을 대상으로 신주 10.3%를 배정하는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형식과 절차 면에서 지난해 논란됐던 유상증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고려아연

고려아연은 지난해 말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금감원의 정정 요구가 이어지면서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한 직후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발표해, 지분 희석과 경영권 방어 목적 논란에 휩싸였다.


고려아연이 유증 자금 상당 부분을 차입금 상환에 쓰겠다고 밝히면서 “회사가 빌린 돈을 주주가 갚는 구조”라는 비판이 확산됐고 증권신고서에 유증 추진 경위와 의사결정 과정이 충분히 기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융감독원의 정정 요구가 이어졌다.


절차 문제뿐 아니라 공시 적정성 논란도 작용했다.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이 내부적으로 유상증자 계획을 수립한 상태에서 이를 알리지 않고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했다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공개매수 신고서에 ‘공개매수 이후 재무구조 변경 계획이 없다’고 기재한 부분이 사실과 다를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결국 금융당국 심사 부담과 시장 반발이 겹치며 유상증자는 철회됐다.


반면 이번 유상증자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추진돼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 자체가 없다. 전날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안을 당일 공시하는 구조로 진행돼, 지난해와 같은 공시 위반이나 금융당국 정정 요구가 개입될 여지는 구조적으로 제한됐다. 지난해에는 금융당국이 유상증자의 문턱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문턱이 사라진 셈이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이번에는 법원이 핵심 판단 주체로 떠올랐다. 이번 유상증자의 관건은 금융당국 심사가 아니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적법성에 대한 법원 판단이다.


영풍·MBK는 이날 이번 유상증자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특정 제3자에게 유리한 지분을 제공하는 구조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들은 미국 제련소 건설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자금조달 방식으로 제3자 배정을 택한 것은 자금 조달이 아니라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는 입장이다.


영풍·MBK는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상법상 허용 범위를 벗어난다고 주장하며, 주주배정 등 다른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이를 배제했고 이사회 절차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영풍·MBK는 이번 유상증자로 인한 지분 구조 변화를 문제 삼고 있다. 현재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 지분 약 44%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최윤범 회장과 우호 지분을 모두 합쳐도 최 회장 측 지분은 30% 초반에 그친다. 유상증자가 성사될 경우 양측 지분은 모두 희석되지만,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합작법인이 약 10%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영풍·MBK의 지분 우위는 크게 줄어들고 양측 지분은 비슷해진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빌딩 전경.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고려아연은 영풍·MBK 비판에 대해 이번 미국 제련소 건설이 미국 정부의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 정책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고려한 합리적인 경영상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전기차·배터리·신재생에너지·전력 인프라 등 미국 내 전략 산업 투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핵심광물에 대한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현지 제련소를 통한 시장 선점 효과가 크다는 입장이다. 온산제련소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추가 물량을 미국 제련소에서 생산·공급함으로써 글로벌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프로젝트는 전체 투자금의 90% 이상을 미국 정부와 재무적 투자자가 부담하는 구조로, 고려아연 단독 투자 대비 차입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제련소 건설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미국 정부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정책·규제 환경 변화에 대한 안정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9월 영풍·MBK가 시도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저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자금을 써야 했다. 이에 부채비율이 증가하고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며 “자사 단독 재원만으로는 부담이 큰 이번 프로젝트에서 외부 자금이 적극적으로 조달되면서 차입 비중이 크게 줄고 재무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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