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일 만에 재 뿌려놓고 성과라는 ‘어공’…뒤처리는 또 ‘늘공’ 몫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5.12.12 09:50  수정 2025.12.12 09:50

전재수 해수부 장관 11일 사표 수리

23일 부산 개청식·업무보고 등 악영향

후임 장관 선임까지 최소 1~2개월

북극항로 등 주요 업무 대행 체제로 수습

통일교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사표를 수리하면서 ‘북극항로 개척’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해수부 부산 이전을 진두지휘해 온 전 장관은 취임 140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강제 이주 당하는 상황을 감수하면서도 해수부 공무원을 비롯한 해양·수산 관계자들은 3선 정치인, 여당 중진 의원이라는 그의 타이틀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벌여놓은 판을 남은 공무원들이 모두 수습하는 상황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전재수 해수부 장관에 대한 면직안을 재가했다. 전 장관이 사의를 전한 당일 처리하면서 이재명 정부 첫 현직 장관이 낙마하게 됐다.


이제 전(前) 장관이 된 전재수 장관은 이임사에서 “장관으로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해 해양수도권을 육성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해양수산업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어 매 순간이 보람찼고, 행복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해양수산업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성과와 실적들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9일 최종 결정된 2028년 제4차 UN해양총회 유치, 국내 최초 메탄올 컨테이너선 운항, 고수온에 적극 대응해 수산업 피해를 줄인 점, 김 수출 10억 달러 돌파 등을 성과로 꼽았다.


굳이 따지자면 이런 공로는 전 장관 몫이 아니다. UN해양총회는 해수부가 전현직 장차관을 중심으로 2년 가까이 공을 들여온 사업이다. 지난 5월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아워 오션 콘퍼런스(OOC)’ 때 사실상 유치를 확정한 내용이다.


메탄올 컨테이너선 운항이나 고수온 대응, 김 수출 10억 달러 돌파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년간 공무원과 업계에서 노력을 쏟은 결과지, 전 장관이 140일 만에 만들 수 있는 성과가 아니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따라 이사 업체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옮겨온 물건을 해수부 부산 청사로 옮기고 있다. ⓒ해양수산부

북극항로 개척, 시작도 못 해보고 낙마


전 전 장관은 떠나는 순간까지 북극항로 개척을 강조했다. 그는 “북극항로는 대한민국 내일을 바꾸는 새로운 항로가 될 것이고, 북극항로에 대비한 해양수도권 육성은 대한민국에 새로운 성장엔진을 장착하는 국가전략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해양수도권 육성을 반드시 완수해 달라”고 했다.


전 장관 당부와 달리 그의 사임으로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도권 육성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3선 중진 국회의원 출신으로 북극항로, 해양수도권은 처음부터 그가 판을 짜고 진두지휘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해수부로서는 이제 막 부산청사로 이삿짐을 옮기기 시작한 상태에서 장관 공백이란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세종에서 부산으로 짐을 옮기는 것도 정신없는 데, 장관마저 공석이 되면서 그야말로 ‘카오스(chaos, 혼돈)’ 상태다. 당장 23일 예정했던 개청식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대통령 참석 가능성이 높은데, 장관 없이 행사를 치러야 할 판이다.


업무적으론 내년 업무보고 계획부터 문제다. 장관 대신 차관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극항로 사업 추진을 위해 범정부 기구인 기획단을 설치하고, 1급 실장 자리를 추가하는 조직개편 작업도 해야 한다. 내년 여름 북극항로 시범 운영을 예정한 상태라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후보 물색과 추천,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후임 장관 선임까지 최소 한두 달은 걸린다. 한해 업무를 본격 시작해야 할 1~2월을 사실상 차관 중심으로 꾸려가게 된 셈이다.


해수부는 전 전 장관 면직 직후 “김성범 차관을 중심으로 업무 공백없이 부산 이전, 북극항로 개척 등 주요 현안 및 국정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한 줄 입장을 내놨다.


결국 사고는 정치권에서 날아온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치고, 수습은 ‘늘공(늘 공무원)’이 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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