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6000가구’에 국토부는 ‘1만가구 이상’
오세훈 “속도 포기한 공급 확대, 집값 안정 안 돼”
국토부 “사업 지연 없이 최대한 많은 물량 확보”
“숫자놀음 무의미…충분한 논의 거쳐 합의점 도출해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뉴시스
서울 용산정비창 내 용산국제업무지구 주택공급을 놓고 정부와 서울시가 또 이견을 보이면서 정부의 일방통행식 소통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기존 개발 계획대로 6000가구 수준의 공급이 적당하단 논리지만 정부는 1만가구 이상, 최대한 많은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연말 추가 공급 대책 발표에 앞서 지자체 및 주민과의 충분한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정부의 일방통행으로 또 다시 문재인 정부 시절 정책 실패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업계 안팎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내 주택공급 규모에 첨예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약 45만6099㎡ 규모의 용산정비창 부지에 업무·주거·상업 기능을 결합한 입체 복합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당초 이곳 부지에 6000가구 규모로 주택공급을 계획한 바 있다.
해당 물량 역시 정부와 협의해 정한 수준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용산정비창에 공공임대주택 등 1만가구 공급 계획을 발표했으나 서울시와 협의해 지금의 수준으로 공급 물량을 수정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계속된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집 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정부 여당에서 재차 ‘1만가구 이상’ 공급 카드를 꺼낸 것이다. 국토부는 서울시에 최근 1만2000가구로 공급 물량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이보다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해야 한단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0월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용산정비창에 2만가구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모형을 살펴보는 오세훈 서울시장.ⓒ뉴시스
김윤덕 장관은 전날인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참석해 “서울시와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지만 가능한 많은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매번 정부의 공급대책이 나올 때마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데다 공급 물량을 놓고도 말이 달라지자 서울시도 더는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이미 지난 2007년 사업계획 수립 이후 올해 본 공사에 착수한 만큼 사업 지체 우려도 적지 않다.
시는 1만 가구 이상 공급은 과도하단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러 공식 석상에서 “6000가구 공급을 전제로 계획을 짰는데 갑자기 1만 가구 이상 공급하면 기초 인프라를 늘려야 해 밑그림을 새로 그려야 한다”며 “사업 기간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날에도 “(정부 요구대로) 물량을 2배 늘릴 순 있지만 속도를 포기한 물량 공급은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속도를 늦추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나 늘릴 수 있을 지가 고민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정부 계획대로 1만 가구 이상 공급을 늘리면 사업은 최소 2년 이상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물량을 늘리더라도 2000가구 내외가 적합하단 판단이다.
정부는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윤덕 장관 역시 “문재인 정부 당시 장관이 (도심 내 유휴부지 등 주택 공급 후보지에) 한 번이라도 찾아가 주민과 협상해 봤을까 싶다”며 주민과 지자체와의 협의를 중요하게 꼽았다.
도심 내 공급 확대를 위해선 특히 서울시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국토부가 계속해서 시와 대립각을 세우긴 힘들어 보인다. 다만 6·27 대책부터 10·15 대책까지 시장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강도 높은 억제책이 반복된 것을 감안하면 지자체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인 공급 대책을 마련할 가능성도 적지 않단 의견이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서로 갈등을 빚게 되면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며 “결국 정부도 서울시가 협조해야 공급 확대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애초에 6000가구를 공급하든, 1만~2만가구를 공급하든, 결국 상징적일 뿐 서울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진 못한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알고 과거의 정책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인데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숫자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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