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準국유 부동산 업체’ 완커, 디폴트 우려 증폭 등 3대 악재 겹쳐
자금난 완커, 15일 만기도래 채권에 상환 1년 연장 조정안 내놔
中 민간기관, 주택 판매 관련 데이터 예정된 날짜에 발표 안 해
中 부동산 재벌, 현금흐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자산매각 추진
중국 동부 장쑤성 난징시에서 부동산 개발업체 완커가 주거용 건물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중국 부동산 시장이 속절없이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오랜 기간 침체의 수렁에서 헤매던 중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기는커녕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로 꼽히는 완커(萬科·China Vanke)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의 핵심 민간 데이터 발표의 돌연 중단,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 부동산 재벌가의 자산 매각 등 복합적인 악재가 겹치며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완커는 오는 15일 만기가 도래하는 20억 위안(약 4160억원) 규모의 역내 채권에 대해 추가 담보없이 기존 이자율 3%를 유지한 채 상환기간만 1년 연장하는 내용의 상환 조정안을 내놨다고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 등이 지난 2일 보도했다. 완커가 역내 채권과 관련해 만기 연장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상환 조정안은 10일 채권단 회의에서 찬반 투표를 거쳐 승인 여부가 정해진다. 채권단 동의를 얻어 찬성이 충족되면 조정안대로 만기가 1년 늦춰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실상 디폴트 절차를 밟게 된다. 중국에서는 지난 몇 년 간 헝다(恒大·Evergrande)·비구이위안(碧桂園·Country garden) 등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디폴트를 ‘선언’함에 따라 침체의 수렁에 빠진 상태에서, 지난 2분기 이후 주택 판매 약세가 다시 뚜렷해지는 등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완커는 30년 넘게 중국 최대 부동산 업체 반열에 올랐던 ‘블루칩’(우량주)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시 국유기업인 선전메트로(지하철)가 완커의 최대 주주인 만큼 사실상 국유기업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중국 부동산 경기 불황에 ‘대마’(大馬) 완커도 지난해 말부터 유동성 위기설이 돌았다.
다급해진 선전메트로는 올해 2월부터 13차례 걸쳐 완커에 314억 6000만 위안 규모의 자금을 완커에 지원하며 채권 상환을 할 수 있도록 안전망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경영진 교체와 함께 선전메트로가 대출조건을 강화할 뜻을 내비치면서 지원이 유지될지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인 만큼 완커에 대한 유동성 압박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달러화 채권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2021년 12월 중국 광둥성 선전시 헝다그룹 본사 앞에서 투자자들이 몰려와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완커가 이번 채권단 회의를 통해 채권 만기를 연장하더라도 디폴트 리스크는 쉽게 사그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달 28일에도 37억 위안 역내채권 상환 만기일을 앞두고 있다. 회사채 원리금도 갚아야 한다.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내년 6월까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원리금만 134억 위안 규모에 달한다.
그런데 선전메트로가 이달 초 완커와 주주대출 한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중국 경제매채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완커는 계약에 따라 내년 6월말 주주총회 전까지 선전메트로로부터 받을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최대 6억 2400만 위안에 불과하다. 완커가 채권 원리금을 상환하기에도 태부족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선전시 정부의 완커를 구제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며 시장 불안감이 커졌다. 완커는 자력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는 형편이다. 부동산 경기의 장기 침체 속에 실적 악화로 부채 상환에 대한 부담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올해 1~10월 완커의 계약 판매액은 1000억 위안 규모로 전년 대비 절반 수준을 급전직하했다. 레너드 로 루크로르 애널리틱스의 애널리스트는 “채권 만기 연장은 광둥성 선전시 정부의 자금줄이 실질적으로 닫혔음을 보여준다”며 “중국 정부가 더 이상 완커의 부채를 떠받칠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업황 침체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완커의 현금 보유액(지난 9월 기준)은 600억 위안 규모이나 단기 부채가 1520억 위안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자금이 바닥난 상태나 다름없다. 헝다·비구이위안 등 굵직한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파산 여파가 수년째 중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판국에 완커마저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경우 부동산발 충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위기가 심화하면서 중국 전역 곳곳의 주택 건설 현장이 ‘란웨이러우’(1년 이상 건설 중단된 아파트)로 전락했다. 사진은 중국 광시장족자치구 구이린의 콘크리트 골재만 앙상한 란웨이러우. ⓒ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중국 주택 판매 관련 민간기관 지표가 예정된 날짜에 발표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가 지난 1일 보도했다.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데이터 기관인 중국부동산정보그룹(CRIC)과 중국지수연구원은 지난달 30일 전국 100대 개발업체의 합산 매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 두 기관은 매달 마지막날에 정기적으로 매출 수치를 발표해 왔으나, 이번에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두 기관은 통상적으로 정부 공식 통계보다 2∼3주 이르게 해당 지표를 발표해온 만큼 신축 주택시장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블룸버그는 중국부동산정보그룹과 중국지수연구원에 논평을 요청했지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국부동산정보그룹이 내놓은 앞서 10월 지표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41.9%나 곤두박질쳐 18개월 만에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11월에도 상위 100대 개발업체의 주택 매매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 급감했고 중국 100대 도시의 재고 주택가격은 7.95%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조치는 완커가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국내 채권에 대한 상환 의무를 연기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나온 만큼 주목받았다. 크리스티 헝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선임 애널리스트는 “중국 부동산 업계 상황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며 “11월 데이터는 더 급감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중국 부동산 재벌인 헨리 청(鄭家純)이 현금흐름 개선을 위해 다양한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헨리 청 일가가 운영하는 뉴월드의 순부채는 지난 6월 말 기준 주주 자본의 98%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월드는 부채만 2109억 홍콩달러(약 39조 7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로 2021년 디폴트에 빠진 중국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홍콩과 중국경제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에 헨리 청 일가는 로즈우드 호텔 소유의 부동산과 홍콩 국제공항 인근의 유명 쇼핑몰인 ‘11 스카이스’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거래가 순탄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지난 몇 년 새 부동산 산업이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한때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넘나들던 경제의 핵심 축 역할을 담당했지만 버블(거품) 붕괴 후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경영난에 봉착하며 도미노 디폴트가 발생했다. 한때 헝다그룹의 부채만 2조 위안(약 415조 4600억원)에 달했고 비구이위안 등 다른 기업들도 막대한 빚을 남기고 맥없이 무너지는 바람에 중국 경제는 장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자료: 외신종합
완커가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기존 민간기업들의 파산과는 파급 영향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국유기업으로 분류돼 중앙 및 지방 정부가 최종적으로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던 완커가 파산 수순으로 들어가게 되면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중국 부동산시장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그룹은 향후 2년간 중국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봤다. UBS는 주요 도시의 중고주택 가격도 고점 대비 3분의 1 이상 떨어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지역별 신규 주택 매매가 안정세에 접어들기 전까지 15~20%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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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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