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조·600조원 투자 약속, 헛되지 않으려면 [기자수첩-산업]

정인혁 기자 (jinh@dailian.co.kr)

입력 2025.12.01 07:00  수정 2025.12.01 07:00

이재용·최태원, 최근 AI데이터센터·반도체팹 건설 천명

AI 강국 외친 한국…에너지 뒷받침은 여전히 빈틈 많아

과기부·기후에너지부·기업, AI·에너지 TF 구성 준비 중

반도체·데이터센터 등 중대한 도전 앞둔 韓, '원팀' 중요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한국 산업계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 입니다. 대통령은 'AI 강국'을 외치고, 기업은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약속하며 역할 분담까지 마무리한 상태입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 열린 민관 합동회의에서도 ‘AI 강국’ 실현을 위한 기업인들의 청사진이 연달아 쏟아졌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향후 450조원 투자를 약속하며 차세대 AI데이터센터와 이를 떠받칠 반도체 팹 건설을 예고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투자 규모를 600조원까지 확대하고, 울산 데이터센터 준공에 그룹 역량을 모으겠다고 했습니다.


삼성과 SK가 구축하는 AI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팹은 말그대로 '전기를 먹고 사는 거대한 생명체'와 같습니다. 전력 인프라는 그 생명체의 동맥입니다. 하지만 산업계의 움직임과는 달리,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대책은 여전히 빈틈이 많아 보입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고 있고, AI 성장 잠재력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전력망 확충 속도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송전선 증설과 같은 전력망 구축의 필수 요건은 주민 수용성·환경 규제·입지 갈등으로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태양광·풍력은 늘고 있지만,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지역 편중'이라는 태생적 한계입니다. '간헐성'을 해소하기 위한 ESS(에너지 저장장치) 구축 계획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현장의 지적이 많습니다.


원전은 신규 건설이 사실상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긴 시간의 사회적 합의와 투명한 절차가 요구됩니다. 그나마 현 정부가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을 추진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역량을 모으고 있는 만큼 산업계의 기대는 이 지점으로 향합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기후 대응·탄소중립·AI데이터센터 구축 등 AI·에너지 정책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조만간 업계가 참여하는 AI·에너지 TF도 꾸려진다고 합니다. ‘AI 강국’의 성패를 가르는 해법이 이곳에서 도출되길 기대합니다.


AI데이터센터는 24시간 GPU를 돌려야 하고, 반도체 팹은 1초의 전력 저하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AI를 말하는 데 있어, 전력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반도체부터 데이터센터까지, 한국 기업들이 도전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국가가 산업의 속도에 맞는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해줘야 합니다. 미국의 관세 압박을 정부와 기업의 ‘원팀 전략’으로 넘어선 한국입니다. 또 하나의 거대한 숙제인 ‘전력’ 문제도 현명하게 풀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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