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교체·쇄신보단 '조직 안정' 방점 둔 인사
2인 대표이사 체제 구축해 조직 추진력 확보도
경쟁력 회복 위해 석학·AI 전문가 전면에 배치
'뉴삼성' 밑그림 남은 임원 인사서 구체화 전망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세대 교체 신호탄'이나 '대폭 인사' 등 당초 관측과 달리, '조직 안정'에 방점을 찍은 소폭 인사를 단행했다.
반도체(DS) 부문과 모바일·가전(DX) 부문의 '투톱 체제' 복원,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을 이끌어온 내부 기술 전문가의 DX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선임, 화학·물리·전자 분야 글로벌 석학 영입 등 이 회장의 '인재 제일'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기술 인재를 전면에 배치해 미래 도전과 경영 안정의 균형을 동시에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21일 사장 승진 1명, 위촉업무 변경 3명 등 총 4명의 '2026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먼저 노태문 사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지난 3월부터 8개월간 맡아온 DX부문장 직무대행에서 정식 부문장으로 올라섰으며, MX사업부장도 계속 겸직한다.
전영현 부회장은 DS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을 유지한다. 이로써 '모바일·가전 수장' 노 사장과 '반도체 수장' 전 부회장의 2인 대표 체제가 구축됐다.
이 회장의 '인재 제일’ 경영 철학은 전 부회장이 겸직하던 SAIT(옛 종합기술원) 원장 자리에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를 영입한 데서도 드러난다. 박교수는 나노기술 및 뉴로모픽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로, 내년 1월 1일자로 공식 입사한다. 이번 인사에서 유일한 외부 영입 인재다.
DX부문 CTO엔 윤장현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부사장)를 사장으로 승진시켜 임명했다. 윤 신임 사장은 AI·로봇 등 미래 기술 투자 분야에서 경험을 갖춘 전문가다. 공석이 된 삼성벤처투자 대표엔 이종혁 삼성디스플레이 대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부사장)이 발탁됐다.
(왼쪽부터) 삼성전자 전영현 반도체(DS) 부문장·메모리사업부장, 노태문 모바일·가전(DX) 부문장·MX사업부장, 박홍근 SAIT원장, 윤장현 DX부문 CTO 사장 겸 삼성리서치장 ⓒ삼성전자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당초 예측됐던 '세대 교체형 대인사'보다는 기술 중심의 선택적 변화에 가깝다"며 "글로벌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경영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되, 미래 기술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인재는 공격적으로 배치한 절충형 인사"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올해 정리되고, 미국발 관세 리스크 등 글로벌 변수도 일정 부분 완화되면서 과도한 변화를 피하고 조직의 안정적 추진력을 확보하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경영 철학은 올해 단행된 수시 인사에도 확인된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AI 기술 고도화 등을 통해 갤럭시 S25 개발 성공과 글로벌 사업 성장을 주도한 최원준 부사장을 MX사업부 COO(최고운영책임자) 겸 사장으로 승진시켰고, 4월에는 3M·펩시 등에서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를 역임한 마우로 포르치니를 DX부문 CDO 겸 사장으로 영입했다. 이 회장은 향후에도 우수 인재에 대한 연중 승진·발탁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MX, 메모리 등 주요 사업의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와 시장 선도를 위해 양 부문장이 MX사업부장과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직하는 체제를 유지했다"며 "반도체 미래 신기술 연구와 AI 드리븐 컴퍼니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각 분야 최고 전문가를 SAIT 원장 및 DX부문 CTO 과감히 보임해 AI 시대 기회 선점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현호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룹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사업지원TF를 상설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격상한 점도 이번 인사 폭을 줄인 요인으로 꼽힌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사업지원TF 사장단과 임원 위촉업무 변경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사업지원TF장을 맡았던 정 부회장은 회장 보좌역으로 물러났고, 사업지원실장으로 박학규 사장이 선임됐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삼성 내부의 기틀을 다지는 조직 개편이 이어지면서, 이번 정기 인사는 큰 폭으로 흔들기보다는 전략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우선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다음 주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이 회장의 '뉴삼성' 구상이 한층 구체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기술 인재를 주요 보직에 전진 배치해 차세대 리더 풀을 확대하고, AI 시대에 대응한 조직 개편으로 미래 시장 선점의 기반을 다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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