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장류 분류 손질 착수…업계 “사업 효율화 VS. 발효식품 정체성” 대립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5.10.28 06:44  수정 2025.10.28 06:44

행정 효율 명분으로 ‘장류’ 대분류 폐지 추진

5종 간장 하나로 통합… 표시 기준도 단순화

대형 제조사, ‘혼합장’ 명칭으로 간장 브랜드 지키기

“장은 문화이자 유산”…소비자단체·정치권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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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간장을 구매하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식품의 제조 기준과 성분 규격을 정하는 ‘식품공전’ 개정을 추진하면서 장류업계를 중심으로 잡음이 일고 있다.


일부 제조사는 ‘혼합장’이라는 명칭으로 ‘조미식품류’ 아래 신설되는 장류 체계 안에 남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전통 장류업계는 “한식 간장 정체성 훼손”이라며 팽팽하게 대치하면서 긴장감이 감도는 모습이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진 중인 식품공전 개정안은 ‘식품 분류 단순화’를 골자로 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식품공전에서 ‘장류’를 하나의 큰 분류(대분류)로 두고 그 아래에 간장·된장·고추장 등을 세분화해 관리해왔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이 ‘장류’ 대분류를 없애고, 장 제품 전반을 ‘조미식품류’라는 더 큰 범주 안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결과적으로 간장과 된장은 ‘조미식품류’ 아래 중분류로 내려가게 되는 것으로, 정부는 이를 통해 관리 기준을 단순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장류 분류 개편을 추진하는 이유는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행 식품공전은 2006년 개편 이후 24개 대분류, 102개 중분류, 290개 소분류로 세분돼 있으나, 일관성 없이 운용돼 효율성과 국제적 정합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식약처는 이번 개편을 통해 안전관리 체계를 단순화하고, 국제 기준에 맞춰 분류 체계를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초안 단계로, 내년까지 식품업계·소비자단체·학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한편, 현장에 갈등을 일으키면서까지 효율성을 추진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식품공전은 간장을 다섯 가지로 나눈다. ▲전통메주로 만든 한식간장 ▲콩·밀·보리를 발효시킨 양조간장 ▲탈지대두를 염산으로 분해한 산분해간장 ▲콩단백을 효소로 분해한 효소분해간장 ▲이들을 섞은 혼합간장이 있다.


그러나 개정안대로라면 기존의 간장 5종 구분은 사라지고, 모두 하나의 식품유형인 ‘간장’으로 통합된다. 이에 제품의 제조 방식이나 원료 차이에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표시돼 소비자는 포장 만으로는 전통 발효식 간장과 화학적 분해 간장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부 제조 업체는 단일화에 찬성하고 있다. 5종 분류가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주고, 소비자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또 국제표준과의 불일치로 수출 통관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어 정합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이 같은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업계에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제품 명칭이 달라질 경우 제품명과 라벨, 용기 디자인 등 포장 전반을 수정해야 해 막대한 리패키징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브랜드 측면에서도 혼선이 예상된다. 주력 제품이 간장에서 ‘소스류’로 분류되면 소비자 인식에도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수출 시에는 해외에서 ‘간장’으로 분류되는 반면 국내에서는 ‘소스류’로 관리돼 품목 코드 불일치에 따른 통관 지연 등 행정적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A제조사 관계자는 “현재 정부에서 진행되는 건이라서 아직 뭐라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서울의 한 마트에서 간장이 판매되고 있다.ⓒ뉴시스

장류업계는 물론, 소비자단체에서도 “식품 분류 단순화가 오히려 소비자의 알권리를 후퇴시킨다”고 바라보고 있다. 정부가 QR코드 표시제 도입 등으로 ‘투명한 정보 제공’을 강화해온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그 중에서도 전통장류 업계를 중심으로 이 같은 개정은 개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메주를 띄워 만든 한식간장과 화학적으로 제조한 산분해·효소분해 간장을 동일한 ‘간장’으로 묶는 것은 전통 발효식품의 가치를 무시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특히나 산분해간장의 제조 역사는 일본으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이 세계 2차대전 중 산분해간장의 생산 공장을 한반도에 만들면서 생겨난 것으로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은 산분해간장을 먹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통 발효 장류’와 동일 분류로 묶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장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오랜 발효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우리 고유의 식문화”라며 “제조 방식이 전혀 다른 제품을 한 분류로 취급하면 전통 장류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는 “만약 5종 간장이 간소화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제조되는지 알 수 없게 된다”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장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동시에, 전통 발효간장 생산자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지난달 10일 대책위 토론회에 참석한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메주와 장류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전통 식품인데, 성분이 비슷하다고 제조법과 기원이 다른 것을 일원화하겠다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라고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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