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는 삼성, 반도체 너머 손에 쥘 것은 [이재용 취임 3년③]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5.10.27 06:00  수정 2025.10.27 06:12

오디오·공조·헬스케어 등 올해 굵직한 딜 네 건 성사

메모리·파운드리 영향력 강화하되 AI 융합사업 속도

특히 헬스케어 눈길, B2C에서 데이터 플랫폼 외연 확대

3주년 행사 無, APEC서 글로벌 파트너십 광폭 행보 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자로 취임 3년 차를 맞았다. 지난 3년은 삼성전자의 핵심 엔진이던 반도체 분야에서 다소 부침을 겪으며 '포스트 반도체 시대'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면, 현 시점으로부터는 단일 성장 모델에서의 탈피를 꾀하는 시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기대감도 올라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10년 넘게 이어진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한 후 실제로 삼성전자가 각 분야에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같은 기조에는 탄력이 붙은 것으로 해석된다.


27일 재계 및 업계에 따르면, 경기 침체와 반도체가 부진했던 올해, 이 회장은 대형 인수·합병(M&A)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비주력 사업군을 미래 성장판으로 키우는 데 집중해왔다. 로봇·모빌리티·헬스케어·XR(확장현실)·바이오·공조(HVAC)등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다.


특히 올해 들어 네 건의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잇달아 단행한 부분이 주목 받는다. 4월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약 5000억 원에 인수했고, 5월에는 독일 상업용 공조 전문기업 플렉트(FläktGroup)를 2조4000억 원 규모로 사들였다.


뒤이어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젤스(Xealth) 인수를 발표했고, 이달 삼성물산과 협력해 혈액 채취만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는 미국 생명공학 기업 '그레일'에 1억 1000만 달러(한화 약 155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마시모 인수는 2017년 하만 인수로 시작된 ‘모빌리티+공간 중심 음향 플랫폼’ 전략의 연장선이다. 단순한 오디오 브랜드 보강이 아니라, AI 기반 인포테인먼트와 차량용 음성 인터페이스, 스마트홈 사용자 경험 고도화를 위한 핵심 기술 투자다. 의료기기 회사인 마시모의 오디오 부문은 하만과의 시너지가 기대되는 사업군이다.


플렉트 인수는 삼성의 사업 지형이 ‘기기’에서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저성장으로 분류됐던 냉난방·공조(HVAC) 산업은 ESG, 스마트빌딩,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재조명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시스템에어컨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플렉트를 통해 유럽 시장 거점을 마련하며 자사의 스마트홈·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실제 공간에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이재용 회장 시대에 특히 눈여겨볼 사업 분야는 바로 헬스케어다. 삼성전자의 헬스케어 사업 진출은 이미 2010년대부터 이어져왔으나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반도체와 모바일로 삼성의 체급을 올려놨다면, 이재용 회장의 동력은 헬스케어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최근 젤스 인수는 삼성 헬스케어 전략의 방향 전환을 상징한다. 삼성헬스가 스마트워치 중심의 개인용 건강관리 플랫폼이었다면, 젤스는 병원·보험사·기업을 아우르는 의료 데이터 통합 플랫폼이다. 삼성은 웨어러블 기기로 얻은 건강 데이터를 젤스의 AI 분석 기술과 결합해, 맞춤형 질병 예측·원격 의료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그레일 투자도 이같은 연장선에 있다. 그레일은 혈액 내 수억 개의 DNA 조각 중 암과 연관된 미세한 DNA 조각을 선별하고 이를 AI 기반 유전체(Genome) 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암 발병 여부 뿐 아니라 암이 발생한 장기 위치까지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이번 삼성전자와 삼성물산과의 공동 투자는 단순한 바이오 포트폴리오 확대가 아니라, AI 기반 질병 예측·진단 기술의 선제적 확보라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삼성은 지난해에도 자회사 삼성메디슨을 통해 의료기기 업체 소니오(Sonio)에 한화 1265억원을 투자하고 같은 해 미국 DNA 분석 장비 기업 엘리먼트바이오사이언스에 투자한 바 있다.


결국 올해 삼성이 주도한 다양한 대형 투자는 각기 다른 산업군이지만, 모두 'AI가 중심에 놓인 산업 구조 재편'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삼성의 AI 전략이 더 이상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수준에 머물지 않고, 의료·건축·환경·오디오 등 실물 산업의 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샘 올트먼 OpenAI 대표와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LOI(의향서) 체결식'에서 악수하는 모습. 삼성은 OpenAI의 전략적 파트너사로서 반도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해양 기술 등 각사의 핵심 역량을 결집시켜 전방위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할 예정임.ⓒ삼성전자

물론 가장 주력 엔진인 반도체 부문에서도 글로벌 협력 폭을 넓히고 있다. 수익성이 악화됐던 파운드리 사업은 테슬라·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 협력을 추진하며, AI 인프라 수요 확대에 맞춰 메모리 공급망의 안정성과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 인수 후보군으로는 AI 반도체 후공정 기술을 보유한 팹리스 스타트업, 유럽의 스마트에너지 관리 기업, 북미 클라우드 의료 데이터 플랫폼 등이 거론된다.


이 회장은 이런 사업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직접 글로벌 현장을 누비고 있다. 올해 초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반도체 협력을 논의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장비업체들과 회동했고, 7월에는 미국 아이다호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글로벌 테크·바이오 CEO들과 교류하며 투자 기회를 모색했다.


당장 28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열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현장도 찾을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등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빅테크 기업인들과 회동하며 협력 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구체적 M&A 신호를 내기보다, 글로벌 파트너 네트워크를 직접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의 미래는 여전히 반도체에 닿아 있지만, 메모리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와 파운드리 격차 속에서 삼성은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제조기업’을 다음 모델로 그리고 있지 않겠느냐"며 "이번 3주년이 별다른 행사는 없지만, 실적과 행보로 뉴 삼성을 보여주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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