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방산 새판 짜는 ‘오너 3세 리더십’ 부상
절친이자 라이벌…한화와 맞대결 본격화
김승연 회장 지분 증여로 ‘승계 구도’ 굳혀
국내 재계에 ‘3세 리더십’의 물결이 본격화하고 있다. HD현대가 정기선 회장 체제로 전환하며 세대 교체를 마무리한 가운데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의 승계 작업도 언제쯤 매듭지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나이와 행보가 비슷한 정기선 HD현대 회장(1982년생)과 김동관 한화 부회장(1983년생)은 각각 조선과 방산을 축으로 경쟁과 협력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HD현대가 오너 3세 체제를 공식화하면서 김 부회장의 승진 가능성도 주목받는 분위기다.
HD현대그룹은 지난 17일 정기선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37년 만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마무리하고, 오너경영 체제로 공식 전환한 것이다.
정 회장은 조선·건설기계·에너지 등 전통 산업의 체질 개선과 함께 인공지능(AI)과 친환경 기술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 전략을 이끌어왔다. 2021년 사장에 오른 이후 5년 만에 그룹의 수장을 맡게 된 그는 미래 산업 중심의 체질 전환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취임 이후 그룹 전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HD현대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과 DNA 덕분”이라며 “모두가 한 뜻으로 뭉쳐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퓨처빌더’가 되자”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취임으로 재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김동관 한화 부회장에게로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오너 3세이자 그룹의 장남으로, 차세대 리더십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인연은 부친 세대부터 이어졌다. 장충초등학교 동창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오랜 친분을 유지해왔고 이를 계기로 두 아들도 교류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2016년 김승연 회장의 모친 강태영 여사 별세 당시 빈소를 찾아 “동관이와 친구라서 왔다”고 밝힌 일화로도 유명하다. 한화의 한화오션 인수를 계기로 조선업에서 경쟁 구도가 형성됐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22년 부회장에 오른 뒤 방산·에너지·우주 등 신성장 부문을 중심으로 그룹의 체질 개선을 이끌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과 폴란드를 오가며 방산 협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통상 협상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등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 김승연 회장이 ㈜한화 지분의 절반을 세 아들에게 증여하면서 김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본격화됐다. 이로써 김 부회장의 ㈜한화 지분은 4.91%에서 9.77%로 늘었으며 두 동생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5.37%)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5.37%)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아졌다. 김 회장의 지분율은 22.15%에서 11.33%로 낮아졌다.
비록 김승연 회장이 여전히 주요 계열사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으나 경영권 승계는 이미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다만 김 회장이 건재한 만큼 공식적인 회장 승계는 일정 기간 조율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화는 지난해 방산·조선·에너지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한 데 이어 올해 8월에도 한화글로벌·한화엔진·한화파워시스템 등 일부 계열사 대표를 교체하며 조직 안정화에 나섰다. 다음 달 중 추가 인사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HD현대와 한화의 세대 교체가 한국 중후장대 산업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그룹 모두 조선·에너지·방산을 주축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탈탄소 전환 등 산업 구조 변화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경쟁 중인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등의 향방에도 관심이 모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HD현대와 한화 모두 오너 3세 중심의 경영 구도가 확립된 만큼, 이제는 그룹별 전략 차별화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정 회장은 기술 중심의 제조 혁신, 김 부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방산 외교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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