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열풍 넘어 K-술…“싼 술이라는 인식 깨야, 우리술도 고급 주류” [쌀로 세계와 짠③]

김소희 기자 (hee@dailian.co.kr)

입력 2025.10.06 10:59  수정 2025.10.06 10:59

천비향 약주로 대통령상 수상한 이예령 좋은술 대표

국산 쌀·자가누룩·밀 재배까지…정체성 지킨 고집

‘싼 술’ 인식 넘어 생활형 축제·문화 확산 과제 목소리

농업법인 좋은술의 천비향은 2025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좋은술 내부 일부 모습.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국산 쌀 100%, 자가누룩, 직접 재배한 밀, 그리고 긴 숙성. 사는 게 더 싸고 편하지만, 굳이 어렵고 비싼 길을 택한 업계가 있다. 경기도 좋은술의 ‘천비향 약주’가 2025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에 오른 배경에는 ‘우리맛 정체성’을 지키려는 고집이 있었다.


올해 품평회에는 전국 246개 양조장 402개 제품이 출품해 경쟁을 벌였다. 그 가운데 천비향 약주가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차지했다.


이예령 좋은술 대표는 “집안의 영광이자 직원·가족 모두의 노력 덕분”이라며 “와인에 떼루아가 있듯, 우리술도 지역의 쌀과 누룩, 물이 빚어내는 고유한 맛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효율보다 정체성…밀부터 누룩까지 직접 만드는 좋은술


좋은술은 2013년 양조를 시작해 삼양주·오양주 복원 작업에 나섰다. 초창기에는 시판 누룩을 사용했지만, 담글 때마다 맛이 달라 술맛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언제는 잘 되고, 언제는 쓴맛이 나는 등 같은 술이 나오지 않았다”며 “결국 직접 누룩을 만들자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직접 누룩을 만들면서도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술을 수없이 버려야 했지만, 밀 품종별 실험과 발효 과정 연구를 거쳐 지금의 자가누룩 체계를 갖췄다. 밀도 직접 심고 제분까지 직접 한다.


그는 “사는 게 더 싸지만, 지역성과 개성을 담으려면 자가누룩이 답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예령 좋은술 대표는 K-전통주에 대한 가격 인식, 문화 등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와인·위스키는 귀한 술, 우리술은 싼 술?”


우리나라에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은 비싼 와인이나 고급 위스키다. 반면 전통주는 값싸고 쉽게 마시는 술로 치부돼 접대 자리에서 좀처럼 선택되지 않는다.


이 대표는 “외국은 손님에게 반드시 자국 술을 대접한다. 중국은 고량주, 일본은 사케처럼 자국 술로 접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우리만 스스로 우리술을 낮춰 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격 인식도 장벽이다.


그는 “와인은 10만~50만 원에도 자연스럽게 소비되지만, 전통주가 그 가격대에 오르면 ‘왜 비싸냐’는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국


산 쌀과 자가누룩, 직접 재배한 밀을 쓰고, 발효·숙성에 수개월 이상 공을 들인 술이 막걸리나 희석식 소주와 같은 기준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제대로 숙성해 만든 술은 충분히 그 값어치가 있다는 게 강조점이다.


문화적 토양의 전환도 필요하다. 해외에는 와인 품평회와 소믈리에 제도가 정착돼 ‘어떤 잔에, 어떤 온도로, 어떤 음식과 함께’ 즐길지까지 세세한 기준이 있다. 반면 전통주에는 잔 문화·페어링 논의가 부족하다.


이 대표는 “막걸리잔 하나로 모든 술을 마시는 시대는 지났다”며 “약주·탁주·증류주 각각에 맞는 잔을 쓰고, 음식과의 조화를 연구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2025년 대한민국 우리술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천비향 이미지. ⓒ농림축산식품부
세계 무대 향하려는 우리술…대중과 가까워질 축제 뒷받침 필요


이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우리술에 대한 관심이 많게는 5배 이상 증가한 것 같다고 얘기한다. 관심이 높아진 만큼 주위 양조장도 많아지고, 획기적인 술도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품평회 수상자에게 국제행사 건배주 기회 등을 주면 전통주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주 보급을 위해서는 문화적 접점 확대가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 전통주를 알리는 창구는 박람회나 품평회 같은 전문 행사 위주였다.


업계 안팎에서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는 늘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가 가족·친구와 함께 가볍게 즐길 생활 밀착형 축제는 드물다.


다른 주류인 맥주 축제는 대규모로 열려 누구나 쉽게 접근한다.


전통주도 지역 축제·도심 페스티벌 등 일상 속 무대가 있어야 취향을 넓히고 소비를 견인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맥주 축제는 대규모로 열려 누구나 쉽게 즐기지만, 우리술은 그런 기회를 찾기 어렵다”며 “지역 축제나 생활 밀착형 행사를 통해 소비자와 가까워져야 진짜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술도 떡볶이, 라면 등 K-Food와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그래야 K-푸드를 넘어 K-술로 확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농림축산식품부의 2025년 FTA 분야 교육·홍보사업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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