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확장돼 가는 것 느낄 때 카타르시스…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 다하고파”
배우 이하늬가 ‘애마’에서 1980년대 톱스타로 변신했다. 시대극을 소화하는 것도, 화려한 그 시절 톱 배우를 연기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애마’만의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더 감사했다. ‘아직 연기만큼 재밌는 걸 찾지 못했다’는 이하늬는 지금처럼 의미 있는 작품, 즐겁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로 꾸준히, 또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갈 생각이다.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의 탄생 과정 속,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에서 이하늬는 그 현실과 용감하게 맞짱 뜨는 톱스타 희란을 연기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화려한 톱스타의 면모는 물론, 그 이면의 진짜 현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강단 있는 모습까지. 1980년대 영화계의 한 단면을 다채롭게 펼쳐내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다소 과장된 말투로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주다가도, 섬세한 감정 연기로 현실감을 배가하는 등 판타지와 현실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애마’만의 분위기를 구축했다.
“(준비를 하면서) 80년대 작품이나 인터뷰들을 찾아봤다. 이해영 감독님이 워낙 꼼꼼하고, 디테일하다. 걸음걸이, 말투를 비롯해 ‘서울 사투리’라고 하는 것까지 어느 정도로 녹여낼지 상의를 했다. 저는 여배우지만, 보통 일상에서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희란은 집 안에서도 꼿꼿하고 우아한 자태를 유지한다. 여배우의 애티튜드를 일상에서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연기 톤도 그렇고, 그때만 있었던 결들을 살리기 위해 조금 과장되게도 해봤다.”
1980년대 애로영화 ‘애로’를 소재로 하는 것엔 부담감이 따를 법도 했다. 이하늬 또한 그 시기 ‘애마’의 이미지를 옮겨 온, 선정적인 작품으로 여겨지진 않을지 걱정을 했다. 그러나 대본을 읽고 나선 영화 ‘애마’의 이미지를 뒤집는, 기발하고 재밌는 넷플릭스의 ‘애마’에 매료됐다.
“영화 ‘애마’의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있지 않나. 그래서 처음엔 감독님께 ‘대본을 주시면 일단 한 번 보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일단은 너무 재밌었다. 저는 재미가 중요한 사람이다. 그냥 후루룩 넘어가는 대본이 있는가 하면, ‘앞에 뭐라고 했었더라’ 다시 봐야 하는 대본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이런 ‘애마’를 어떻게 내놓을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자극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극 중 베드신도 있었는데, 소비적으로 그 씬이 활용됐다면 너무 불편했을 것이다. 같은 장면이라도 어떤 앵글로, 또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 작품은 건강하고 무해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과감하고,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활동한 배우는 아니지만, “그 시스템의 끝물은 맛을 본 것 같다”고 말한 이하늬는 ‘애마’가 던지는 메시지에 특히 만족했다. 지금은 개선이 됐지만, 이하늬 또한 여배우를 향한 왜곡된 시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촬영 환경에 대해 ‘부조리하다’고 생각한 바 있었다. 희란처럼 나서서 목소리를 내진 못했지만, 이렇듯 작품으로 필요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다.
“모든 작품에 애정이 있다. 그런데 특별히 ‘애마’는 이 시기, 이 작품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2025년을 살아가는 배우, 여배우로서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라는 걸 느꼈다. (여배우는) 소수자라고도 볼 수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부당한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반가웠다.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이런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을 축하하고 싶다. 또 80년대 충무로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것이 한국 시청자, 그리고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도 궁금했다.”
ⓒ넷플릭스
극 중 갈등하며 또 연대하는 희란과 주애의 관계를 연기하는 것도 특별했다. 주애를 연기한 배우 방효린 또한 이 작품이 첫 주연작인 신인으로, 실제로도 닮은 점이 있었지만 견제보다는 도와주고 자극받으며 ‘애마’를 ‘함께’ 완성했다.
“희란은 정말 꼿꼿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주애라는 새로운 인물에게 자극을 받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접점을 만들게 된다. 주애에 대해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 배우로서 동질감이나 연민을 가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연대하기도 한다. 여자들끼리만 연대해도 세상이 조금 더 진일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 그런 느낌을 현장에서도 받았다. 순서대로 찍은 건 아니지만, 주애 역의 방효린 씨도 점점 마음을 열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합이 딱 들어맞는 그 순간을 서로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정말 연기에 진심이구나’, ‘너도 연기 잘하고 싶구나’라는 걸 딱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번에 방효린과도 그런 걸 주고받으며 연기했다. 어떨 땐 씬이 끝나고 안아주기도 했다. 그 연대감이 한 번에 탁 생기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깊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연기 잘하는 동료들을 만나는 것 또한 ‘행운’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하늬는 “‘큰일 났다. 이렇게 다 연기를 잘하면 우리는 설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동료 배우들과 나눴다”며 함께한 동료 배우들을 향한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이하늬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통해 경쟁력을 보여주겠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 극 중 희란이 주애를 바라보는 마음이 내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경쟁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어떻게 연기를 더 깊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대체불가능한 배우가 돼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연기가 너무 좋다. 취미도 많고, 늘 뭘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아직 연기보다 재밌는 걸 못 찾았다. 예전에 안 됐던 부분이 확장되면 너무 반갑다. 다른 분들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모자라지만, 나 스스로는 조금씩 확장돼 가는 것을 느낄 때 카타르시스가 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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