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의회의 불신임으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내각이 사퇴한지 하루 만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39) 국방부 장관을 신임 총리로 임명했다. 불과 20개월 사이에 다섯 번째 총리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엘리제궁(대통령실)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을 신임 총리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르코르뉘 총리가 국민에 봉사하며 정치·제도적 안정을 통해 국가 통합을 이루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며 “대통령이 신임 총리에게 정당들과 협의해 국가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향후 정책 결정에 필요한 합의를 도출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르코르뉘 총리는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은 내게 명확한 방향을 지닌 정부를 건설하라는 책무를 줬다”며 “이는 우리의 주권과 힘을 수호하고 국민에 봉사하며 정치적·제도적 안정을 통해 국가 통합을 이루라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르코르뉘 총리는 과거 우파 공화당(LR)에서 정계에 입문했다가 2017년 마크롱 대통령 집권과 함께 생태적 전환부 장관에 오르면서 집권 여당 르네상스로 당적을 옮겼다. 마크롱 1기 행정부에서 해외영토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2기 행정부에서 정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2기 첫 총리인 엘리자베트 보른 내각에서 국방장관으로 기용된 뒤 가브리엘 아탈, 미셸 바르니에,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내각에서 연이어 유임되며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지난 3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을 총괄해왔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르코르뉘 총리에 대해 “정치적 성과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왔다”며 “국방예산과 정책 집행을 일사불란하게 이끌며 대통령의 ‘분신’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르코르뉘 총리의 과제는 무엇보다 2026년 예산안 합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4%에 달하는 정부 부채를 짊어진 프랑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긴축안을 추진했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바이루 내각이 무너졌다. 로이터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측근을 총리로 임명한 것이 민심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회당 등 좌파 진영은 그를 마크롱 대통령의 충실한 대리인으로 치부하며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엑스에 “의회와 유권자, 정치적 품위를 경멸하는 이 비극적 희극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뿐”이라고 맹비난했다. LFI과 녹색당, 공산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하원에 대통령 탄핵안을 공동 발의했다.
르코르뉘 총리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진 극우 국민연합(RN)과의 관계 설정도 과제 중 하나다. 그는 마린 르펜 RN 의원과의 비밀 만찬 등 밀착 행보를 보여 “극우와 거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우파 성향으로 분류된다. 마크롱 내각에 입각하기 전까지는 우파 공화당 소속이었고, 2017년 대선 때 이 당의 후보로 마크롱 대통령과 맞붙었던 프랑수아 피용 캠프에서 활동했다. 강력한 국방력 등을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힘을 강화하자는 ‘골리스트’(드골주의자)를 자청하기도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총리로 세워 국정 동력을 쥐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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