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조 보복 관세 재가동 시사…EU·영국 겨냥했지만 한국도 영향권
미, 디지털 규제를 '기술패권 위협'으로 인식…AI·플랫폼 전략 직격탄 우려
국내 온플법·망사용료 입법 추진, 통상 협상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디지털세를 겨냥해 추가 관세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 테크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으로, 그 여파가 국내에서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법, 망 사용료 규제에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식 협상 패턴상 언제든 관세 카드를 꺼낼 수 있고, 플랫폼 규제는 AI·데이터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단순 입법을 넘어 국가 전략 차원의 리스크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디지털세,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안, 디지털 마켓 규제는 모두 미국 기술을 해치거나 차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 법안들은 터무니없게도 중국의 테크 기업들에게는 완전히 예외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국가에 경고한다"면서 "차별적 조치가 제거되지 않는 한, 미 수출품에 대한 대규모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미국이 보호하는 첨단 기술 및 반도체의 수출도 제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빅테크에 부담을 지우는 규제가 있을 경우 관세로 보복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엄포를 놓은 것이다. 이는 미국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다. 이 조항은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를 토대로 해당 관행을 조사하고 보복 관세 등 무역 제재를 부과할 권한을 갖는다.
1기 이어 2기에도 301조 보복 관세 재가동 시사…한국도 영향권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영국 등을 대상으로 이들 국가가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인 디지털세에 대해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 바 있다. 당시 즉각적인 보복 조치는 없었고,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조사 대상 국가들과 협상 후 대응 중단에 합의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집권 후 다시 디지털세를 문제 삼으면서 해외는 물론 국내 법안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그의 발언은 한·미 정상회담 시기와 맞물리며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301조 레버리지를 다시 꺼내겠다는 것"이라며 "미국의 디지털·ICT 기반 서비스 수출은 무역흑자의 핵심 축으로 미국의 주력 산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코트라의 ‘디지털 경제 커진 미국, 해외 디지털세에 관세 조치 가능성 시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디지털 경제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디지털 서비스(통신·인터넷·클라우드 등), 인프라(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축으로 2022년 기준 4조3000억 달러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2017년 대비 42% 증가한 수치로, 관련 일자리는 약 890만명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처럼 성장성이 큰 미국 디지털 산업에 외국 정부가 세금을 부과해, 본래 미국 경제로 환원돼야 할 자국 기업들의 수익을 빼앗고 있다고 주장한다.
장 원장은 “디지털 기술은 미래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미국은 AI·클라우드·빅데이터 등 첨단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해외 규제는 이러한 기술 주도권을 약화시키고 중국에 추월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트럼프의 입장은 집권 1기 때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관세 등 방식은 달라질 수 있어도 이를 관철하려는 주장은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쓸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통상 카드가 관세"라며 "세계 최대 수입 시장인 미국에서 공산품 중심 수입 구조를 고려하면 관세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국내 온플법·망사용료 입법 추진, 통상 협상 변수
관세를 무기로 한 국제 통상 마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과 '망 사용료 입법'은 추진 동력이 최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현재 온플법은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폐해방지법과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으로 분리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미국의 반발이 큰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규제를 골자로 한 '독점규제법'은 후순위로 하고, 입점업체의 수수료 부담과 불공정 계약을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정화법을 먼저 도입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정화법을 살펴보면 기업 지정 기준이 과도하게 포괄적이어서 사실상 대부분의 국내외 플랫폼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된다. 일부 의원이 주장하는 수수료 상한제를 이 법안에 담을 경우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같은 국내 배달 플랫폼뿐만 아니라 앱 마켓을 운영하는 구글, 애플도 범위에 포함되는 데, 이를 미국 측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코트라는 "한국의 경우 디지털세와 같은 조세제도는 아직 없으나 독과점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하는 준비 단계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 속에서 한국의 정책 방향성 역시 일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진단했다.
이봉의 교수는 "온플법은 국내에서 동력이 약화된 상황인데, 미국이 강경 시그널을 보낸 만큼 당장 추진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강행한다면 미국이 일관된 입장을 내세웠던 만큼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압박에도 AI 산업 등 국가 전략을 관철시키려면 플랫폼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돼야 하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좀 더 전략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온플법은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카드일 수 있지만, 정부 의사결정에 따라 한국 플랫폼 생태계가 급변할 위험이 있다"면서 "AI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플랫폼에서 데이터가 확보돼야 하는데, 플랫폼을 잃으면 국가 AI 전략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90년대 한국 인터넷 산업이 부분 유료화, 확률형 아이템 등 세계적으로 독특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낸 것처럼, 지금은 AI와 플랫폼 기업·스타트업이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할 시기"라며 "국내 플랫폼 기업과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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