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기업 규제 입법 연이어 쏟아내
경제계 "노란봉투법 경제 위태롭게 하는 법안"
"대안 제시했음에도 노동계 입장만 반영해"
상법 개정엔 "해외 투기자본에 경영권 노출"
"우리가 아무리 얘기해봤자 저쪽(정부·여당)은 듣지도 않는데, 이렇게 나와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경제6단체 및 경제단체협의회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수정 촉구 경제계 결의대회'에서 한 경제단체 관계자가 이같이 말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제2·3조 개정안에 대해 경제계는 이재명 정부 출범 전부터 우려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으나, 현 정부와 여당이 노동계의 요구만 반영한 법안 처리에 나서면서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노란봉투법은 물론 상법 개정, 법인세 인상 등 기업 규제 입법과 세제 개편 등으로 기업을 옥죄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3일 노란봉투법을, 24일 2차 상법 개정안을 각각 상정해 처리할 방침이다. 경제계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채 규제만 강화한다"며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제계가 가장 크게 반발하는 법안은 노란봉투법이다. 노란봉투법은 회사의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합법적 노동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 배상 책임은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계는 그동안 법안이 기업 경영과 산업 현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하며 신중한 입법을 요구해 왔다.
경제계는 결의대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은 협력업체 노조의 원청업체에 대한 쟁의행위를 정당화시키고, 기업의 사업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금도 산업현장은 파업에 따른 근로 손실일수가 선진국보다 많고, 강성노조의 폭력과 파괴, 사업장 점거 등 불법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구조조정과 해외 투자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된다면 파업과 실력행사로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 의사결정이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파이터치연구원의 '노란봉투법 도입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시행돼 노조의 불법 파업에 따른 손실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을 경우 우리나라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적게는 3조8000억원, 많게는 15조2000억원이 감소한다. 만약 기업의 손해배상청구가 완전히 제한된다면 총일자리는 27만2000개, 총실질자본은 62조9000억원, 총실질소비는 400억원, 실질설비투자는 1조4000억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도 경제계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자체 소통플랫폼 '소플'을 통해 국민 1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산업현장의 노사갈등은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응답의 76.4%가 '보다 심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전체의 80.9%는 '개정안 통과 시 파업 횟수와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처럼 노란봉투법이 산업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큰 만큼, 경제계는 대안까지 제시하며 여러 차례 정부·여당 설득 작업을 벌였다. 경제계는 노조가 일으킨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액 상한을 시행령에서 정하고, 급여 압류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대안으로 냈다. 손해배상이 근로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해치지 않는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노동계의 요구만 반영해 법안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방일·방미 순방에 동행할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하며 "원칙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맞춰야 할 부분이 있다"며 노란봉투법 입법 의지를 강조했다.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역시 같은 날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AMCHAM) 회장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노란봉투법을) 수정할 수 없다. 지금은 올라간 대로 절차에 따라 (노란봉투법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사용자 범위는 현행법을 유지하고, 노동쟁의 대상에서 '사업경영상 결정' 만은 반드시 제외해 달라고 수차례 호소했다"며 "그럼에도 국회는 경제계의 요구는 무시하고 노동계의 요구만 반영하여 법안 처리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상법 개정안 역시 기업을 옥죄는 법안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담겨 있는 2차 상법 개정안을 24일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달 처리된 1차 개정안에는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취지다.
하지만 경제계는 "국내 기업들이 헤지펀드나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리더스인덱스가 오너가 있는 자산 상위 50대 그룹의 상장사 중 오너일가 지분이 존재하는 계열사 130곳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5.8명의 오너일가와 1.1개 계열사, 0.6개 공익재단이 포함된 이들의 우호지분율은 40.8%였다. 그러나 1차 상법 개정에서 통과된 3%룰과 이번 2차 개정안의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동시에 적용되면 이 중 37.8%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상장기업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76.7%가 "2차 상법 개정안이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응답했다.
경제계는 최근 호소문을 통해 "이사 충실의무 주주 확대에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해외 투기자본에 기업 경영권을 노출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 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국회가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 입법을 연이어 쏟아내는 것은 기업들에게 극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법인세까지 인상되면서 기업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정부가 확정한 2025년 세제개편안은 법인세율을 2022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렸다.
일반 법인의 경우 과세표준 2억원 이하 구간은 9%에서 10%로, 2억~200억원 구간은 19%에서 20%로, 200억~3000억원 구간은 21%에서 22%로, 3000억원 초과 구간은 24%에서 25%로 각각 1%p씩 오른다. 소규모 법인 역시 구간별로 동일하게 1%p 상향된다. 이번 개정은 2026년 1월 1일 이후 개시하는 사업연도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법인세 환원을 통해 세수 기반을 강화하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경제계는 "주요 선진국들이 기업 유치 경쟁을 위해 법인세 인하와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가운데 우리만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업 부담 가중을 지적하고 있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망 불안, 고금리 등으로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규제와 세금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면 투자와 고용은 위축되고 결국 국민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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