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뮤지컬학회’ 창립
초대 회장에 고희경·부회장에 원종원 교수 추대
한국 뮤지컬계가 지난 60년의 역사를 발판 삼아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한국뮤지컬학회가 지난 16일 발기인 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초대 회장으로는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을, 부회장으로는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를 추대했다. 이는 그간 현장 예술로 인식되던 뮤지컬이 ‘학문’으로서의 좌표를 정립하고,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한국뮤지컬학회
한국 뮤지컬 시장은 지난 25년간 30배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 일본에 이어 세계 4대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6월에는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토니상에서 6관왕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K-콘텐츠의 핵심 동력임을 입증했다. 이처럼 산업적, 사회적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그 성장을 뒷받침할 학문적 기반은 부재하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학회 창립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됐다. 고희경 초대 회장은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탄탄한 이론 연구에 대한 현장의 열망이 너무나 강하다”며 “지난 60년간 한국 뮤지컬 현장에서 선후배들이 이뤄온 빛나는 성과를 제대로 추수하고, 이름 짓고,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즉, 산업의 양적 팽창에 걸맞은 질적 성숙을 위해 학문적 체계 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원종원 부회장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학회 설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뮤지컬이 이룬 많은 성과의 토대를 어떤 이들은 모래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거대한 반석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뮤지컬학회는 그 반석을 더욱 굳건히 하고, 그 위에 더 큰 집을 짓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2022년 공연법 개정으로 뮤지컬이 연극의 하위 장르에서 벗어나 독립 장르로서의 법적 지위를 확보한 현시점에서, 한국 뮤지컬의 토대를 바로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임을 시사한다.
주목할 점은 ‘뮤지컬학회’라는 조직이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뮤지컬의 본고장인 서구에서도 뮤지컬을 독립된 학문 분야 ‘뮤지컬학’(Musical Studies)으로 규정하고 연구하는 학술 단체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희경 회장은 “서구에서는 뮤지컬을 ‘시어터 스터디즈’(Theatre Studies)의 일부로 보거나 상업 예술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어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한글로 ‘뮤지컬’이라고 썼을 때 우리가 명확히 인식하는 이 장르를 학문적으로 규정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우리가 선도할 수 있다”며 “한국에서 시작된 ‘뮤지컬학’을 정립해 세계로 확산시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던 이태원 명지대 교수는 “‘뮤지컬학회’와 같은 명칭은 아니지만, 브로드웨이 안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학술대회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 뮤지컬학회가 만들어지면 그쪽과 연계해 함께 학술대회를 여는 등 교류할 방안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2년 전부터 대만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과 교류 의지가 높다. 홍콩도 마찬가지”라며 “저희 한국이 기점이 되어 학술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현재진행형인 ‘뮤지컬 한류’가 ‘뮤지컬학의 한류’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낳는다. 원종원 부회장 역시 “이미 해외의 젊은 학자들이 한국 뮤지컬의 성과에 주목하며 교류를 원한다는 연락을 해오고 있다”면서 “케이팝이나 K-드라마처럼, K-뮤지컬이 세계 뮤지컬 연구와 현장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회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뮤지컬 시장의 교육 기관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한국 뮤지컬의 우수한 성과를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뮤지컬학회는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미래 계획도 제시했다. 우선 2026년 상반기 중 창립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학회지 창간호를 발간해 한국 뮤지컬 60년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한국 뮤지컬만의 특성을 반영한 ’한국뮤지컬학‘을 정립하고,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보다 실질적인 교육 및 연구 시스템을 발굴하고 체계화한다는 목표다.
이날 축사에 나선 뮤지컬계 원로들 역시 학회의 출범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1970년대부터 뮤지컬을 제작하고 2005년 국내 최초로 대학에 뮤지컬학과를 창설했던 송승환 전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과거에는 어떤 학문적 바탕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뮤지컬을 만들어왔다”며 “이제 학회가 만들어짐으로써 대한민국 뮤지컬이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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