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일본 뉴 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 소마이 신지의 작품들이 2025년, 한국 극장에서 세대를 초월한 호응을 얻고 있다.
가장 먼저 지난달 23일 개봉한 ‘이사’(1993)는 개봉 4주 차에 2만 5947명의 관객을 모았다. 또한 CGV 에그지수 95%, 왓챠피디아 별점 4.0을 기록하며 실관람객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부모의 이혼을 마주한 소녀 렌의 성장을 절제된 시선으로 그린 이 작품은 소마이 신지 감독의 대표작이자, 그의 영화 중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0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처음 소개된 이후, 정식 개봉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 2023년 촬영감독 쿠리타 도요미치의 참여로 4K 복원되었고,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 클래식 부문에서 최우수 복원 영화상을 수상했다.'이사'는 지난해 개봉한 1985년작 '태풍 클럽' 이후 정식으로 국내 극장에 소개된 소마이 신지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이사'의 기세를 이어 받은 '여름정원'(1994)은 지난 6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으며, 그의 초기 대표작 '태풍 클럽'(1985)은 13일 개봉한다. '태풍 클럽'은 지난해 국내에서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선보인 후, 1년 만인 올해 다시 개봉하게 됐다.
이처럼 그의 주요작들이 연이어 스크린에 걸리며, 소마이 신지라는 이름이 다시금 국내 영화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여름정원'은 그해 여름 방학, 죽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홀로 사는 노인을 감시하기 시작한 세 소년의 잊지 못할 시간을 그린다. 삶과 죽음을 통찰력 있게 다룬 이 작품은 소마이 신지의 열한 번째 장편이자, 디렉터스 컴퍼니 해체 이후 요미우리 TV와 손잡고 '이사'와 함께 제작된 영화다.
키네마 준보,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요코하마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키네마 준보 선정 1994년 일본영화 베스트 5위에 오르며 일찌감치 명작으로 평가받았다.
'태풍 클럽'은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여름, 시골 중학생들의 위태로운 심리를 파격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1980년대 대표작이다. 제1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2008년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올타임 일본 영화 베스트’ 10위에 오르며 전설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의 뉴 웨이브를 이끈 거장 소마이 신지 감독은 1980년 '꿈꾸는 열다섯'으로 데뷔했으며, 이듬해 '세일러복과 기관총'의 흥행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하세가와 가즈히코, 구로사와 기요시, 이시이 소고 등과 함께 디렉터스 컴퍼니를 세워 80년대 일본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13편의 장편을 연출한 그는, 2001년 폐암으로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영화들은 스튜디오 시스템이 무너진 일본 영화계의 혼란 속에서 독립적이면서도 실험적인 형식과 감정을 절제한 연출로 청춘영화의 새로운 지형을 개척했다.
소마이 신지의 영화가 국내에서 정식으로 소개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데에는, 1990년대까지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전면적으로 개방되지 않았던 배경이 있다. 당시 일본 영화는 지상파와 일반 극장에서는 거의 상영되지 않았고, 일부 영화제나 특별전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소개될 수밖에 없었다.
'태풍 클럽'의 수입·배급사 엠엔엠인터내셔널 임동영 대표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들은 그간 정식으로 접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대부분의 극장이 디지털 상영 시스템으로 전환된 만큼,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기존 필름 영화를 복원하고 재상영하는 작업도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또 "소마이 신지의 영화들은 최근 리마스터링을 통해 마치 신작처럼 관객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를 비롯해 일본의 젊은 감독들이 소마이 신지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그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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