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쇼트 시네마(126)] 일상의 규칙이 된 '문 앞에 두고 벨X'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7.23 11:02  수정 2025.07.23 17:29

이주영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틈틈이 배달 일을 병행하는 지호(지우 분)는, 이른바 ‘라이더 투잡러’다.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에 중고 자전거까지 장만한다.


어느 날 쌀국수를 배달하러 간 지호는 '문 앞에 두고 벨 X'라는 고객의 요청에 혼란을 겪는다. 문을 찾지 못한 채 헤매다 배달 사고가 나고, 결국 고객은 쌀국수가 불어서 못먹겠다는 불만을 터뜨린다.


지호는 쌀국수를 다시 배달하기 위해 식당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식당까지 20분, 식당에서 픽업해 다시 배달까지 20분, 고객의 불만을 수습해야 하는 지호의 마음은 초조하다.


비까지 쏟아지는 날씨에 자전거는 무용지물이 되고, 결국 그는 배달료보다 비싼 택시를 잡아탄다.


겨우 배달 마무리를 지은 지우에게 돌아온 건 ‘불만족’ 평가가 올라간 후기다. 실망과 허기 속에 간식을 꺼낸 지호는 "배달기사님 수고하십니다. 하나씩 가져가세요."라는 작은 문구를 마주한다. 수많은 다그침과 재촉 끝에 만난 이 한 줄의 위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의 마음을 건드린다.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며 지호는 동생과 먹을 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 돌아간다. 그 순간, 자신의 집 문 앞에서 동생이 시킨 치킨을 배달 온 또 다른 라이더와 마주친다.


'문 앞에 두고 벨 X'는 배우 이주영의 첫 연출작이다. 거창한 드라마 없이 하루를 겪는 지호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직접적인 설명 대신, 배달 이동 경로와 반복되는 지연, 삐걱대는 시스템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청춘의 버거움과 허털함을 쌓아간다.


'문 앞에 두고 벨 X'라는 제목이 코로나 이후 비대면이 일상이 된 현재, 배달 요청 사항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로 사람과 사이의 거리감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배달의 편리함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인물을 조명해 개인화된 서비스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호의 고된 하루 속에도 악인이 없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쌀국수 사장님(염혜란 분)은 오지랖이 넓어 지호의 사정을 궁금해 할 뿐, 배달 사고로 인해 다시 쌀국수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잘못은 묻지 않는다. 컴플레인을 건 고객(류경수 분) 역시 짜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여자친구가 못 먹겠다"고 말할 뿐, 끝내 큰 화는 내지 않는다. 자전거를 자신의 가게 앞에 세워놨다고 투덜대는 일식집 사장(현봉식 분)도, 결국 잔소리 한마디로 끝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치킨을 들고 있는 지호와, 치킨 배달 온 라이더가 마주치는 순간, 이 짧은 교차는 관계가 역전되는 아이러니함이 포착돼 흥미롭다. 남일 같지 않은 지호는 문 앞에서 자기가 들고 올라가겠다고 호의를 건네지만 라이더는 바쁜 듯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리는데, 그렇다고 지호의 눈빛에 원망은 없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라이더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 아닐까. 러닝타임 러닝타임 20분.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