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합병·회계부정' 대법원 선고서 무죄 확정
사법리스크에 대규모 투자 등 의사결정 '공전'
2심 무죄 후 M&A 재개…글로벌 행보도 가속화
최대 위기 직면한 삼성 경영 정상화 분수령 해석
약 10년간 이어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대법원이 이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하면서, 삼성은 최대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경영 정상화에 본격 나설 수 있게 됐다. 재계는 이를 계기로 이 회장의 '뉴삼성' 체제가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7일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으로 기소돼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 회장에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20년 9월 재판이 시작된 이후 약 4년 10개월 만이자, 2심 판결 이후 5개월여 만이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내 미래전략실을 동원해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두 회사의 합병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에만 국한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오너 리스크' 사업 전략에 차질…2심 무죄 선고 이후 보폭 넓혀
이번 무죄 확정은 단순한 판결을 넘어, 명실상부한 '족쇄 해방'을 의미한다. 이 회장은 총수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직후부터 국정농단 사건과 합병 의혹 등 각종 사법리스크에 시달려 왔다. 구속과 실형, 해외 출장 제한 등은 그의 글로벌 경영 활동에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오너 리스크'는 삼성의 사업 전략은 물론 글로벌 투자자와 시장 내에서 불안 요소로 작동했다. 특히 이 회장이 2심 무죄 선고를 받기 전까지 대규모 M&A 시계는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사실상 멈춰 있었다.
이 같은 제약 속에서도 이 회장은 2022년 회장에 취임하며 "과거의 삼성과 결별하겠다"는 이른바 '뉴삼성'을 선언했다. 그는 수직적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인재 중심의 혁신 체제를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반도체 초격차 유치,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CDMO), 인공지능(AI), 로봇 등 미래 산업에 5년간 45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도 그가 직접 제시했다. 미국, 유럽, 중동 등지를 잇따라 순방하며 정상급 인사들과 만나 협력 관계를 넓히는 등 묵묵히 체질 개선과 미래 준비를 주도했다.
그의 경영 보폭은 지난 2월 2심 무죄 판결 이후 더 커졌다. 이 회장은 무죄 선고 직후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AI 투자를 논의했다. 지난 3월엔 중국을 찾아 10년 만에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고,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와 베이징 샤오미 전기차 공장을 찾아 전장 사업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삼성전기는 BYD로부터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대규모 공급 계약을 따냈다. 최근엔 글로벌 재계 거물들의 사교 모임인 '선 밸리 콘퍼런스'에도 참석했다.
정체됐던 M&A도 재개됐다. 4월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5000억원에, 5월엔 독일 공조업체 플렉트를 2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달 초에는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젤스와의 인수 계약도 체결했다. 다만 삼성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의 M&A는 아직 소식이 없다. 경쟁 업체들이 공격적인 인수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삼성 최대 위기…"李 이젠 기업가로서의 미래 증명할 때"
긴 사법리스크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온 이 회장은 이제 경영 성과로 오너로서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기업가로서의 미래를 증명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55.9% 급락(4조6000억원)하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경쟁력 약화와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로 인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라인 가동률 하락 등 반도체 사업 부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재계는 이 회장의 무죄 확정이 삼성의 경영 정상화와 중장기 전략 실행에 있어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오너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미래 산업 투자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등 굵직한 전략이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삼성은 그간의 불확실성을 털고 본격적인 혁신 드라이브에 나설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는 이 회장이 경영 성과를 통해 리더십을 입증하고, 주요 전략 과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실행에 옮길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정리되면서 투자와 M&A 등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속도가 붙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며 "삼성이 그간 준비해온 중장기 전략들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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