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삶의 숨구멍이다. 비행기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은 세상 걱정을 멀리 밀어내는 듯하다. 앞 좌석의 넉넉한 공간은 삶의 여유가 깃든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여행은 그런 기분 좋은 들뜸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행은 때때로 예상 밖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햇살과 비, 웃음과 고통이 교차하는 풍경 속에서 사랑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잠시나마 지상의 무게를 벗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비행기 앞 비즈니스석에 몸을 싣는 여행은 하늘 위의 귀빈이 된 듯한 기분이다. 좁은 좌석에 몸을 욱여넣으며 앞줄 승객들을 부러워하다 이번엔 시선을 받는 쪽이 되었다. 누군가의 부러움을 받으며, 비즈니스석에 앉은 나는 마치 일상이라는 고단한 무게를 맡겨 두고 비상하는 새처럼 가벼웠다. 연말이면 소멸한다는 항공사의 알림을 받고 여태 아껴 두기만 했던 마일리지를 활용하여 앞 좌석으로 앉았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제주도에 도착하는 날부터 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한참을 퍼붓다 이내 그치기를 반복한다. 여행의 방향타는 아내 손에 쥐어졌다. 평소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핸드폰을 부지런히 검색하여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낸다. 유채꽃밭에 갔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주인공 애순이와 관식이가 사랑을 키워가던 유체꽃밭에서 신혼 시절의 분위기를 잡아보려 했었는데 이미 수확을 끝낸 뒤라 황량한 벌판 가운데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 뒤돌아 내려오는데 갑자기 아내가 비명을 지른다. 허탈한 발걸음으로 내딛다 비에 젖은 낙엽 위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벌떡 일어나지 못한 채 발등은 이내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호사다마’라고 하더니 하필 제주까지 여행 와서 이런 일을 겪다니.
가까스로 부축해 병원으로 향했다. 팔·다리에 깁스한 환자가 왜 거리도 많은지.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찍은 엑스레이엔 실금 같은 게 보인다. 골절 여부는 확실치 않으니 깁스를 하고 서울에 올라가 CT 해 보라고 한다. 졸지에 목발을 짚는 여행자가 되었다. 몇 해 전 태국 파타야 관광 갔을 때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다니는 서양인을 보고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저런 사고를 당했을까’ 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그런 일이 닥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때의 안타까움이 우리 몫이 되었다.
자동차도 혼자 타지 못하여 문을 열어 뒷좌석에 태우고 닫아주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늘 옆좌석에서 조수 노릇 했었는데, 뒷좌석에 앉는 사모님이 된 것이다. 펜션 문턱을 넘을 때도 쭈그리고 앉아 등을 내밀면 엉거주춤 업혀 건넌다. 화장실 문도 열어주어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식사 준비도 모두 내 차지다. 식탁 옆 의자에 앉아 물을 반쯤 붓고, 된장을 한 숟가락만 넣으라는 말에 순순히 따르는 주방 조수가 된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과정을 거쳐야 반찬 한 가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바뀐 역할 속에서 아내가 40년 넘게 감내해온 삶의 무게를 처음으로 뼛속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겪는 수고는 그동안의 노고에 건네는 작은 답례일 뿐이다. 더 머무르는 것이 힘들 것 같아 “비행기 표를 바꿔서 올라가자”라고 하자 아내는 “무슨 소리야, 원래 계획대로 지내다 가요”라고 한다. 순순히 그러자고 할 줄 알았는데 단칼에 잘라 버린다. 장맛비보다 질긴 여행 의지에 웃음이 터진다.
하루 이틀 지나자 걸음걸이가 조금씩 좋아진다. 요령이 생기고 몸의 균형이 회복된 듯했다. 관광지에 가더라도 조금 걷다가 힘이 들어 앉아있으면 내가 둘러보고 사진을 촬영하여 풍경을 전해준다. 돌문화공원에서는 휠체어를 빌려 아내를 태우고 낑낑거리며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에서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당기며 둘러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걷기 불편한 이를 배려하는 편의 도구가 갖추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무심히 보았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그들에게는 절실했음이 이제야 보인다. 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거리를 줄이려 애쓰고, 길이 가팔라 보이면 다른 경로를 찾는 등 불편함이 최소화하도록 해 준다. 부부 중에 누가 먼저 병들고 곁을 지킬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돌봄은 언젠가 돌아올 위로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서울로 돌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아내의 발이 더는 상하지 않기를, 아픔이 덧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일주일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려 목발을 짚고 공항에 갔다. 항공사 직원이 재빠르게 휠체어를 준비해준다. 개찰구에서 비행기로 바로 연결되는 비행편이 있는지 알아보는 등 최대한 노력에도 항공편이 없자 미안해하는 직원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대신 다른 승객들은 계단을 통해 공항버스로 이동할 때 우리는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자상한 배려가 송구할 만큼 고마웠다. 이번 여행은 편안한 비즈니스석에서 시작되었지만, 삶은 함께 꾸려 가는 ‘돌봄’이라는 의미를 깨달은 여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목발 위에 마음을 얹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휠체어의 바퀴가 공항의 유리 바닥에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삶은 순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류의 흔들림 속에서도 함께 붙잡은 손의 온기를 느끼며 가야 하는 여정일 것이다. 비즈니스석보다 더 소중한 자리는 다친 아내의 곁에서 몸을 낮추어 보조를 맞추는 것이리라. 목발은 단지 다리의 보조 기구가 아니라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를 하나로 일으켜 세우는 작은 기둥이다. 그 작은 기둥 곁에서 더 깊고 단단한 사랑을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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