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낙하산 실험장...KAI 흔드는 ‘사장 리스크’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5.07.02 12:16  수정 2025.07.02 18:03

윤석열 캠프 출신 강구영 전 사장, 임기 3개월 남기고 자진 사퇴

전략 실행 한계 지적...성과 있었지만 전임자 영업 연장선 평가도

방산 4사 중 ‘나홀로 실적 후퇴’...낙하산 테스트베드 논란 재점화

강구영 전 한국항공우주산업(AKI) 사장.ⓒKAI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으로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임기를 3개월여 남기고 물러났다. 공식적으로는 ‘주요 사업 마무리 후 자진 용퇴’지만 실질적으로는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정치적 흐름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정치권 코드 인사가 방산기업의 리더십 연속성을 해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AI는 이날부터 차재병 고정익사업부문장(부사장)이 임시 대표이사로 직무를 대행한다. 새 대표이사 선임 시까지 사장 직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강 전 사장은 지난 1일자로 물러났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첫날인 지난달 4일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을 찾아 사의를 표명한 뒤 인수인계를 준비해왔다.


공군사관학교 30기 출신인 강 전 사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군사지원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2022년 대선 당시에는 김 전 장관과 함께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으며 윤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강 전 사장은 국내 1세대 시험비행 조종사로 KT-1, T-50 개발에 참여한 기술 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영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전략 실행력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성과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그는 재임 기간 국산 항공기 수리온과 T-50, FA-50 등의 수출을 이끌었고 최근에는 필리핀과 FA-50 12대(7억 달러 규모) 추가 수출 계약도 성사시켰다. 하지만 폴란드·말레이시아 등 주요 대형 계약은 대부분 전임 안현호 사장의 성과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강 전 사장은 취임 직후 KA-21 개발을 주도한 핵심 인력을 해임하며 후속 지원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K-방산의 호황 속에서 실적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KAI는 지난해 매출 3조6337억원, 영업이익 240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4.9%, 2.8% 줄었다. 방산 3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가 모두 실적을 끌어올린 가운데 KAI만 유일하게 후퇴했다.


대형 수주 실패도 뼈아팠다. 국내 최초로 민간기업이 주관하는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5호’ 개발 사업이 LIG넥스원에 돌아간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LIG넥스원이 총괄 주관하는 국가 연구·개발(R&D) 프로젝트로, 2031년까지 약 3400억원이 투입된다. 2022년부터 위성 시스템과 본체 개발에 나선 LIG넥스원이 관련 분야에서 30년 가까운 경력을 쌓아온 KAI를 제친 셈이다.


비행 중인 KF-21 복좌형 4호기.ⓒKAIⓒ=

정치권 낙하산 인사의 반복이 기업 리더십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해친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KAI는 수출입은행(26.41%)과 국민연금공단(9.05%) 등 정부 지분율이 35%를 웃도는 기업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교체돼 왔다. 역대 8명의 사장 중 내부 승진자는 단 1명뿐이며 대부분이 고위 관료 출신이나 군 출신 외부 인사다.


업계는 KAI가 정권 교체 때마다 사장이 바뀌는 ‘낙하산 테스트 베드’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구조는 수년 단위의 R&D와 수출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방산기업의 특성과 맞지 않고 중장기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강 전 사장의 퇴진과 함께 후임 인선도 본격화됐다. 현재 후보로는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이 거론된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국방선임행정관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엔 방사청장을 지내며 천궁-Ⅱ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이재명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도 국방안보자문위원단으로 활동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기술 고문인 류광수 전 KAI 부사장도 후보군으로 꼽힌다. 그는 KF-21 개발을 총괄한 고정익사업부문장 출신으로 ‘KF-21의 산증인’으로 불렸으나 강 전 사장 취임 직후 해임된 바 있다. 박인호 전 공군참모총장도 후보군이다. 그는 이재명 선대위 특보단 출신으로,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KAI는 전략무기 개발과 수출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업으로, 단순한 정치 코드 인사가 아닌 산업 전문성과 경영 안정성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정치 개입이 전략 산업을 소모하는 구조로 굳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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