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없이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나 [기자수첩-산업]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5.06.27 07:00  수정 2025.06.27 07:00

'전기차 충전구역서 내연기관차 주차 허용' 법안 발의

가뜩이나 안 팔리는데… 현대차 올해만 4번 생산 중단

李정부 공약 '2030년 전기차 50% 달성' 멀어져

한 쇼핑몰에 설치된 전기자동차 충전소ⓒ뉴시스




'비어있는 전기차 충전 구역에 내연기관차를 주차하게 하면, 주차 공간 부족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까?'


퇴근 후 주차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내연기관차 오너가 할 법한 이 단순한 생각이 곧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하필 한 국회의원의 머릿 속에 떠오른 탓이다.


현재 테슬라 커뮤니티, 전기차 동호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자면 단연 최근 국회에 발의된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일 것이다. 전기차를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은 물론, 전기차를 이미 구매한 이들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7일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전기차 충전 구역에서 심야시간대에 한정해 일반 차량 주차를 허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충전 시설 설치 수량과 지역 내 전기차 보급률, 주차여건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충전 구역을 대상으로 한다.


이 법안을 발의한 의도는 분명하다. 전기차 판매가 예상보다 더디고,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내연기관차를 선호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아서다. 자꾸만 늘어가는 내연기관차들이 주차할 자리가 부족해져 주민간 갈등이 커지고 있으니 이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매력적인 제안이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매달 차가 10만 대 이상 팔려나가는데, 이 중 전기차는 10% 수준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내수 판매량까지 떨어진 상황이니 이 법안이 내수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차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내연기관차 오너가 아쉬운 마음에 내뱉는 수준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 충전구역은 단순히 주차 갈등 해소를 위해 늘렸다가 줄이는 데 쓰여서는 안 될, 국가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사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주차구역은 비어있어도 되고, 내연기관차는 주차 구역이 부족해도 감내해야하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내연기관차 구매자가 사탕을 포기하고 집에 있기를 택한 아이라면, 전기차 구매자는 병원에 갈 것을 알면서도 사탕을 받아든 이들이기 때문이다.


감수하는 리스크에 비하면 대단히 달콤한 사탕인 것도 아니다. 목 좋은 자리에 전용 주차 구역을 마련해주고, 공영주차장 주차료를 깎아준다고 해서 전기차를 구매한 이들이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감, 부족한 충전 인프라, 화재 불안감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가 사탕 하나로 병원에 가는 두려움을 좋아하게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초 정부가 사탕을 만든 취지는 친환경차 보급 확대와 국가적 탄소 중립이었다. 불편해도 종국에는 가야할 길을 누군가 먼저 가게 하려면 꼭 필요한 사탕이었다.


내연기관차를 타는 이들의 주차구역을 덜어 전기차 충전 구역을 만들기로 했을 때, 내연기관차 오너들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것이 아니다. 내연기관 주차 구역이 혼잡해지는 것 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전기차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이번 개정안을 발의한 여당 의원들의 시선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토록 국가적 목표로 전기차 전환을 외쳤으면서, 정작 전기차 사용자들의 라이프 사이클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자동차‘라는 점만 같을 뿐,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내연기관차는 주유소에 들렀다 출근해도 지각하지 않지만, 전기차는 전날 밤 자칫 충전 구역을 뺏기면 다음날 최소 1시간은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밤새 충전해 낮에 타야하는 것이 전기차고, 이런 전기차에 쥐어준 전용 충전 구역을 뺏는다는 건 존속성에 치명타를 입힌단 의미다.


전기차에 대한 이해도가 현재와 같은 수준에 머무른다면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전기차 보급률 50% 공약은 쉽게 닿을 수 없다. 게다가 최근 편성된 추경안에는 무공해차 예산이 5000억원 이상 줄었다.


정부의 아이러니한 태도에 곤란해지는 건 비단 소비자 뿐이 아니다. 전기차 보조금은 갈 수록 줄고, 기준은 깐깐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사탕은 작아져간다. 전기차를 열심히 만들어도 팔지 못하는 기업들의 부담은 누가 책임져줄까.


현재 제조사들은 전기차를 전체 판매의 일정 비율 이상 팔지 못하면 벌금을 내고 있다. 내연기관차를 아무리 많이 팔아도 전기차가 안 팔리면 환경을 더럽힌 죗값을 치러야한다. 전기차는 예상만큼 팔리지 않고, 여기에 최근엔 미국의 자동차 관세로 수출까지 힘들어지면서 현대차는 올해만 전기차 일부 생산라인을 4번이나 멈춰 세웠다.


사탕을 줘도 병원에 가려는 아이가 적다면,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 사탕을 탐내는 아이가 많아졌다면, 사탕을 조금 더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어차피 모든 아이가 언젠가는 병원에 가야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집에 있는 아이에게 사탕 맛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부디 전기차를 많이 보급하겠다는 정부의 손으로 전기차 캐즘을 늘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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