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시중은행 스테이블코인 상표권 출원
디지털 금융 생태계 속 원화 입지 강화 가능
자금세탁·암시장 확대 등 불법활동 악용될 소지도
최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민간 기업과 금융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제도화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주요 핀테크 기업과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상표권을 출원하며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업계는 스테이블코인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제도적 불확실성과 시장 신뢰 확보 등 해결 과제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26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페이를 비롯한 핀테크·인터넷 기업, 일부 은행들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잇따라 출원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17일 'PKRW, KKRW, KRWK, KRWP, KPKRW, KRWKP' 등 6개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연상케 하는 명칭을 3개 상품 분류로 나눠 총 18건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해당 분류에는 가상자산 금융거래업, 전자이체업, 중개업, 가상자산 소프트웨어, 채굴업 등 다양한 사업 영역이 포함돼 있다.
은행권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KBKRW, KRWN, KRWKB' 등 관련 상표권을 출원했다. 하나은행 역시 'HanaKRW', 'KRWHana' 등 다수의 상표를 신청했다. 업계는 이를 향후 시장 활성화에 대비한 선제적 상표권 확보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입법 논의도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0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기자본 5억원 이상을 보유한 핀테크 기업이나 일반 기업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했다. 이와 별도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자기자본 기준을 10억원 이상으로 상향한 '디지털자산혁신법'을 다음 달 중 발의할 계획이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될 경우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효과는 결제 수수료 절감과 자산 거래의 효율성 향상이다. 기존의 글로벌 디지털 결제 수단이 주로 달러 기반인 점을 감안할 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자산을 보다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시장에서 한국 자산의 접근성과 활용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특히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이 USDT, USDC 등 달러 연동형 스테이블코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통화 다변화를 유도하고 시장의 외환 리스크를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한국 금융당국의 정책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국내외 디지털 금융 생태계 속에서 원화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기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법적 지위와 규제 체계의 모호성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상품인지, 지급수단인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아 인허가, 준비자산 요건, 소비자 보호 등 핵심 사항들이 아직 공회전 중이다. 특히, 역외에서 발행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유통될 경우 자본통제 회피, 자금 세탁, 암시장 확대 등 불법활동에 악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 신뢰를 가늠할 준비자산 투명성 역시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글로벌 1위인 테더(USDT 발행사)조차도 준비자산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성과 준비자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경우 디페깅(스테이블코인이 연동 자산 가치에서 벗어나는 현상)과 대규모 상환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등 신뢰 기반 기관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넘어 사용처 확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규진 타이거리서치 대표는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가 국제 시장에서 더 많은 사용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확장성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본질적으로 '원화를 어디에서 어떻게 더 많이 쓰이게 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결론적으로는 원화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본질적인 대화를 이어가되, 단기적으로는 전술적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사용처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며 "은행이든 민간이든 지금은 USDT·USDC 같은 글로벌 생태계와의 접점을 먼저 확보하는 게 현실적인 우선 순위"라고 덧붙였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