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탈을 쓴 야수' 벤츠 AMG GT 55 4MATIC+[시승기]

데일리안 제주 =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06.26 07:00  수정 2025.06.26 08:00

476마력 V8 바이터보 엔진의 괴력…제로백 3.9초에 도달하는 압도적 성능

액티브 롤 제어로 고속 코너링에서도 흔들림 없는 주행 안정성 구현

2+2 시트와 675ℓ 트렁크로 실용성 확보…일상까지 품은 신사형 스포츠카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2도어 쿠페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앞에 서자 고전동화 ‘미녀와 야수’가 떠올랐다. 미녀가 아니라 그간 미녀의 마음을 잘 몰랐어도 야수를 처음 마주한 순간의 심정은 알 것 같았다. 강렬한 존재감에 압도돼 나 자신은 작아지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하지만 야수가 사실은 잘생긴 왕자였던 것처럼 이 차 역시 마법을 품고 있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품격 있는 신사로 변신한다.


지난 23일 동화 같은 환상을 현실로 바꿔준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를 타고 제주 신창풍차해안도로를 약 60km 가량 달렸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정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정측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성난 눈매의 헤드램프, 잔뜩 미간을 찌푸린 듯한 두 줄의 보닛 파워돔, 무엇이든 삼켜버릴 듯한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 그리고 바닥에 바짝 엎드린 낮은 차체. 그 모습은 마치 심기가 몹시 불편한 고양잇과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보통 이런 차를 마주하면 감탄이 먼저였지만 이날만큼은 한숨이 먼저 나왔다. 곧 이 맹수를 타고 조종해야 하는데 자칫 방심하면 통제력을 잃고 오히려 위협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옆이 바다인 구불구불하고 협소한 제주 해안도로에서 2억원대 차량을 조심스럽게 몰아야 한다는 부담은 꽤 무거웠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측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시트에 거의 파묻히듯 앉자마자 낯선 시야에 적응이 어려웠다. 낮은 차체 탓에 시야를 확보하려고 시트를 최대한 높였고 사이드미러나 포지션 조정조차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안전벨트를 매자 벨트는 망설임 없이 강하게 조였다. 다소 거친 손길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회성이 부족한 야수가 서툰 솜씨로 챙겨주는 느낌이었다.


출발할 때까지 난관은 이어졌다. 평소 현대차의 칼럼식 변속기에 익숙한 손은 무의식적으로 위로 올렸지만, AMG GT 55의 조작은 정반대다. 가장 위는 후진, 아래로 내려야 드라이브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프레임리스 도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공도로 나선 뒤에도 기껏 고성능 스포츠카로 가속은 자제하면서 주행했다. 그러다 텅 빈 직선 구간에서 동승자가 “좀 더 밟아보라”고 부추겼고 결국 가속페달을 조심스레 밟았다.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풍경이 휙휙 스쳐가자 긴장감에 발에 쥐가 날 정도였다. 정신력과 핸들링이 함께 흔들렸다. 마치 쥐의 심장으로 야수를 다루는 기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원 맨 원 엔진(One Man, One Engine)’ 원칙 아래 제작된 4.0ℓ V8 바이터보 엔진(M177)은 9단 MCT 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476마력, 최대토크 71.4kgf·m의 성능을 낸다.


이는 1세대 GT 라인업 중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를 발휘했던 AMG GT R과 같은 수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3.9초 만에 도달한다. 숫자로만 들었을 땐 와닿지 않던 수치도 몸으로 겪고 나니 야수의 위력이 그대로 전해졌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앞좌석.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하지만 동시에 이 지점에서 절제된 매너를 갖춘 신사다운 진면목이 드러난다. 고속 주행이나 급격한 커브에서도 차체는 흔들림 없이 노면을 단단히 붙잡았다.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제이션이 적용된 AMG 액티브 라이드 콘트롤 서스펜션은 야수 같은 괴력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주행 안정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스포츠카도 벤츠가 만들면 신사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야수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바닷길을 달리자 해방감이 서서히 밀려왔다. 페달과 스티어링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고 정확해 마치 차와 내가 한 몸이 된 듯한 감각을 준다. 조작감은 섬세하면서도 직관적이다. 주행 모드도 컴포트부터 스포츠 플러스까지 다양해 감각을 즐기는 재미도 컸다.


이제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 속 한 장면 같았다. 처음엔 으르렁거리며 위협적이던 배기음도 이젠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고로롱’처럼 부드럽고 편안하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외부 소음은 잘 차단됐다. 배기음을 제외하면 차 안은 고요했고 실제 외부도 조용한지 확인하려고 창문을 열어보기도 했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트렁크.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뒷좌석.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이처럼 차와의 긴장감 넘치는 첫 만남이 점차 신뢰와 여유로 바뀌는 동안 이 차가 단지 ‘강한 차’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차’임을 느꼈다. 일상의 스포츠카로서 주행 성능뿐 아니라 공간과 구성까지 한층 더 여유롭고 실용적으로 다듬어져서다.


2도어 스포츠카 특유의 공간 제약을 줄이기 위해 2+2 시트 구조를 적용했다. 실제 뒷좌석은 사람이 앉기보다는 짐을 두기에 더 적합하다. 부피가 큰 짐은 뒷좌석보다 트렁크에 두는 것이 낫다. 트렁크 용량은 1세대 대비 두 배 가까이 확장된 최대 675ℓ로, 웬만한 SUV를 압도하는 크기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후측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 후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한편, 지난달 국내 시장에 공식 출시된 GT 55 4MATIC+는 1세대 모델이 공개된 지 10년 만에 등장한 완전 변경 모델이다. 국내 출시 가격은 2억560만원이다.


타깃

–운전할 땐 스포츠카, 짐 실을 땐 SUV를 원한다면

–미녀(디자인)냐, 야수(주행성능)냐 둘 중 고민 중이라면? 둘 다 드릴게요


주의할 점

–가격은 잔혹동화, 구매하려면 야수의 심장으로

–낮은 차체에 탈 때 우아함을 유지하려면 코어 근육이 필수

–시트 ‘2+2’ 중 뒤 2는 정말 '덤'으로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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