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강화에도 허점 '속수무책'
어떤 제도든지 구멍 존재하기 마련
근본적 '사고 경계' 문화 자리 잡아야
국내 은행권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은행권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목소리는 높였음에도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왜 사고를 막지 못하는지, 제도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본지는 4회에 걸쳐 은행 내부통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책무구조도 안착을 가로막는 걸림돌과 미래의 내부통제 방향과 과제를 들여다본다. 제도가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문가 의견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올해 상반기 국내 은행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규모가 1790억원을 넘어섰다. 거액의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정부도, 은행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책무구조도' 도입 등 칼을 빼 들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개인의 일탈 행위가 반복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은행에서 공시된 금융사고는 총 16건으로 규모는 무려 1790억392만원에 달한다.
은행권의 금융사고는 배임, 사기, 횡령, 부당대출, 금품수수 등의 형태로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올 들어 첫 금융사고는 지난 1월 IBK기업은행에서 드러났다. 기업은행은 당초 239억5000만원의 업무상 배임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지만, 이후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88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은행권에서 내부통제에 방점을 찍은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대규모 금융사고가 적발되자, 업계에서는 '보여주기식'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반응이었다.
이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에서도 금융사고가 이어졌다. 각사 공시에 따르면 이들 은행에서는 올 들어 85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미 지난해 피해 규모인 1774억원의 절반을 넘어선 수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사고가 금융당국의 강력한 제재와 은행권의 내부통제 강화 선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사고가 적발되다 보니 지난해 은행권에 도입된 책무구조도가 제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나오는 상황이다.
임원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명확히 규정해 '방탄 임원'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사후 대응일 뿐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사고는 왜 반복되나?..."결국은 의식·문화적 요소"
전문가들은 거대 금융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유로 개인의 일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은행 시스템 상 거대 조직에서 수많은 직원이 독립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비위 행위를 사전에 모두 감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 발생한 은행권 금융사고는 특정 직원이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수법으로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순환근무, 명령휴가 제도 등 내부통제 시스템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성과 지상주의와 그에 따른 압박감도 금융사고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적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비정상적인 대출을 취급하거나 서류를 위조하는 등 비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솜방망이 법적처분과 금융권의 온정주의 문화 역시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다.
그동안은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나 형사 처벌이 가볍게 끝나거나, 조직 차원 '제 식구 감싸기'식의 온정주의가 남아있었다.
"엄정처벌 원칙·신뢰 문화 두 바퀴로 가야"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사고 책임자에 대한 엄정 처벌 원칙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실패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도적 보완과 함께 조직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책무구조도와 같은 제도적 대책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더러, 어떤 제도든 허점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도입 초기인 만큼 현재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이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윤리의식과 책임감을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사고는 반드시 적발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하는 '신뢰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며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은행 조직 구성원 모두가 체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 내부통제 사슬②] '금융판 중대재해법' 책무구조도 안착 급한데…발목 잡는 이것>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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