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부 부처 업무보고 중단 사태
전임 정부 잘못 이유로 ‘군기 잡기’
‘신상필벌’ 필요하나, 과하면 부작용
국민 위해 일할 공무원 사기도 고려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을 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아야 함은 당연하다. 문제 원인이 ‘사람’에 있다면 책임도 물어야 한다.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따끔한 회초리도 필요한 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반대 경우에는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다.
지난주 이재명 정부 인수위원회라 할 수 있는 ‘국정기획위원회’가 각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몇몇 부처는 보고 도중 퇴짜를 맞았다. 검찰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조직 해체가 거론되는 부처들이다.
국정기획위는 이들 기관의 과거 업무(정책)에 관한 반성을 요구했는데, 보고에는 이런 내용을 제대로 담지 않다며 질책했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에 따르면 검찰은 대통령 공약 내용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보고 형식도 갖추지 못했다. 보고 내용도 검찰이 갖고 있는 현재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이라고 한다.
방통위 또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과 개선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게 국정기획위 설명이다.
해양수산부도 업무보고 파행 기관 중 한 곳이다. 해수부는 업무보고 내용이 사전 유출된 점이 문제가 됐다. 조승래 대변인은 “해수부에 설명을 요청했지만, 설명과 태도가 불명확해서 더 이상의 보고는 무의미하다고 분과장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이유는 이전 술의 향이 새 술에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치 또한 정권이 바뀐 만큼 전 정부 색깔을 지우겠다는 선택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비상계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른 정권이었던 만큼 책임 추궁과 조직 쇄신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야당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국정기획위의 행태가 ‘점령군’의 모습처럼 보이는 게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의도적으로 망신을 주려는 목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업무보고에서 대놓고 하는 비판은 해당 부처 공무원 모두에 대한 질책과 같다. 그런 점에서 군기를 잡는 행위는 최소화될 필요가 있다. 이들 부처에 속한 모든 공무원은 이제 ‘이재명 정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부세종청사 전경. ⓒ연합뉴스
해수부를 보자.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 모르지만, 업무보고 내용이 사전에 밖으로 흘러 나갔다면 문제인 게 맞다. 핀잔을 듣고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만하다.
다만 여기까지다. 전 정부 실책에 대한 ‘기강 잡기’ 차원이라면 이쯤에서 그쳐야 한다. 한 걸음 더 나가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해수부는 대통령이 바뀌면서 졸지에 원치 않는 이사를 하게 생겼다. 아무리 ‘까라면 까야 하는’ 공무원이라지만 난데없는 부처 이전 소식이 기분 좋을 리 없다. 공무원 본인들은 그렇다 해도 졸지에 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자녀들은 무슨 잘못인가? 해수부 구성원 86%가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해수부 공무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이전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아가 국가 발전에 가장 이로운 방식의 이전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북극항로 시대’에 적합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잘못에 대해 회초리를 든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매 맞은 이들의 사기를 북돋울 때다. 일선 공무원은 정권과 관계없이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탄생에는 계엄 사태에 대한 공무원들의 분노와 저항의 ‘표심’도 담겨 있다. 공무원 모두에게 계엄의 잘못을 물어서는 안 된다.
아픈 부위가 있으면 환부(患部)만 도려내자. 엄한 부위에 칼을 들이대 멀쩡한 곳까지 고통스럽게 만들 일이 아니다. 114만 명이 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이제 모두 이재명 정부 국민을 위해 일할 인재들 아닌가. 지금부터는 칭찬으로 고래를 춤추게 만들 시간이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