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국가 AI 컴퓨팅센터 무산... 국산 생태계 '빨간불'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5.06.17 06:00  수정 2025.06.17 06:00

두 차례 공모에도 민간 참여 전무

정부-기업 간 온도차에 사업 좌초

AI 반도체 실증 기회 잃은 스타트업

"GPU 독점 생태계 더 강화" 우려도

ⓒAI 생성 이미지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2조5000억원 규모의 국가 AI(인공지능)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두 차례 공모에도 불구하고 참여 기업이 없어 유찰되면서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당초 국내 AI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생태계를 육성하겠다는 목표였지만, 현실과 괴리된 구조가 발목을 잡았다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AI 컴퓨팅센터 민간투자사업’ 공모를 실시했으나, 단 한 곳의 컨소시엄도 응모하지 않으면서 사업이 전면 유찰된 상태다. 사업은 비수도권 지역에 2027년까지 엑사플롭스(ExaFLOPS)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약 1만 대의 GPU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당초 정부는 고성능 GPU 수요 폭증에 대응하고 국내 기업들의 AI 학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해당 사업을 기획했다. 하지만 사업 구조 자체가 민간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는 비판이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SPC(특수목적법인) 설립 시 정부가 51%의 지분을 갖고, 민간은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여기에 정부가 정한 ‘매수청구권 조항’은 사업 종료 시 민간이 SPC 지분과 이자를 함께 매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참여를 더욱 꺼리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국내 AI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GPU 접근성은 당분간 개선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를 대규모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은 AI 학습 인프라를 해외 클라우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더욱 고착화될 전망이다.


직접적인 타격이 우려되는 분야는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다. 이번 사업은 당초 국내 기업이 개발 중인 NPU(Neural Processing Unit), PIM(Processing-in-Memory) 기반 AI 반도체의 실증과 수요 확대를 위한 기회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센터 사업 유찰로 인해 국산 AI 반도체는 공공 레퍼런스 확보 기회를 상실하게 됐고, 실제 수요를 기반으로 한 상용화 추진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AI 반도체 기업들은 국산 칩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제 환경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처럼 대형 공공 사업에서조차 배제되면 실증 기회 자체가 없어진다”며 “기술은 있어도 쓸 곳이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과기정통부는 사업 구조 전면 재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SPC 지분 구조 조정, 수익 모델 구체화, 민간 리스크 완화 대책 등이 검토되고 있으며, 별도로 추진 중인 1조원대 GPU 구매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예정이다. 다만 AI 컴퓨팅센터와 연계되지 않은 GPU 공급만으로는 실질적인 AI 생태계 강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AI 및 반도체를 ‘국가전략기술 10대 사업’로 지정하고, 산업 생태계 육성에 나섰지만 정작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 구축에는 실패한 셈이다. 이번 유찰 사태가 단순한 행정 차원의 좌초를 넘어, 국내 AI 반도체 산업의 성장 축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정책 방향의 근본적인 수정이 요구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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