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판서 '호구' 취급받는 韓…새 대통령은 대책 내놔야 [기자수첩-ICT]

황지현 기자 (yellowpaper@dailian.co.kr)

입력 2025.05.30 07:00  수정 2025.05.30 16:15

국내 거래소는 환전소, 국내 시장은 자금 탈출구 전락

대선 후보들은 말 뿐인 공약만 남발

가상자산 판 주도하겠다는 미국 따라야

26일 남양주 유세 나선 이재명 후보(왼쪽부터), 평택 K-55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유세하는 김문수 후보, 24일 수원역 로데오거리에서 유세하는 이준석 후보 ⓒ연합뉴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기준 투자자는 1600만명에 달한다. 어림잡아 영리활동을 하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가상자산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정도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로 이름을 떨쳐야 하지 않을까.


어림도 없는 얘기다. 이들이 투자한 돈은 한국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 한국 거래소는 투자 기회도 적고 파생상품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수익 기회는 해외 거래소에 있다. 이들은 가진 원화를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로 바꿔 해외 거래소에 입금하고 주 거래 활동은 해외에서 한다. 비트코인 가격과 함께 해외 거래소는 사상 최대 실적을 매 분기 경신한다.


이정도면 국내 거래소는 환전소로 전락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국내 거래소에 뒤늦게 상장된 가상자산은 잠깐동안의 펌핑(가격 급등)이 나타나지만, 이 때 해외 투자자들이 가진 물량을 던진다. 전세계 가상자산 업계에서 '한국 거래소 상장'은 '해외 프로젝트들이 가진 물량을 비싸게 팔 마지막 탈출구 확보'로 여겨진다.


나흘 뒤면 21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각 당 대선 후보마다 가상자산 산업을 키우겠다고 한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허용,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등 듣기 좋은 말들을 '줍줍' 해서 공약에 욱여넣었다.


하지만 허울 뿐이다. 이번 대선 TV 토론에서 코인이 언급된 것은 1차, 단 2분에 그쳤다. 그마저도 각자가 가진 정책을 설명하는 게 아닌 상대 후보 비방이었다. 투자자들이 듣고 싶은 건 투자자 보호니 뭐니 하는 '공감'이나 '격려'가 아니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제 체계와 방향 있는 산업 육성책이다.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해 온 미국은 비트코인과 가상자산 시장을 자신들이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이후 은행권에서 각종 탄압을 받은 뒤 가상자산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수립 직후 행정명령에서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언급하며 비축을 선언했다. 트럼프 가문이 주도하는 나스닥 상장사 트럼프미디어(DJT)는 25억 달러 규모 비트코인 매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 세계 경제 대통령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제롬 파월도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인정했다. 미국 규제기관은 지난 행정부와 달리 가상자산 친화적 규제를 짜겠다고 하고, 운용자산 수경(京)원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도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는 신임 대통령은 전 세계 시류에 편승할 의지가 있을까. 비트코인 현물 ETF의 개인 투자 허용 등 전향적인 정책을 내놓을까. 아니면 해묵은 폰지 사기니 튤립 버블 타령 하며 이미 가치 저장수단으로 인정받은 비트코인을 비주류 취급만 하고 있을 것인가.


가상자산은 글로벌 질서를 새로 쓰는 도구이며, 실물 자산을 대체할 전략 자산이기도 하다. 통제 대상이 아닌 육성해야 할 산업이다. 제도권이 뒷받침하고 신뢰가 더해져야 건전한 시장이 형성된다.


최근 기관이 기부금으로 받은 가상자산을 매도하도록 허용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새 정권에서는 법인 실명계좌를 허용하고, ETF 허용을 비롯해 수탁산업과 법인 진입을 유연하게 허용하는 등 다음 단계를 향해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한국이 더 이상 '자금의 출구'가 아닌, 자산이 모이는 중심지가 되기 위해선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환전소로 전락한 국내 거래소도 살리고,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바보 취급 받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도 다시 부흥시키려면 산업을 통제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성장 동력으로 삼는 새 대통령의 새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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