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주공5, 저층·비선호동 임대주택 배치에 서울시 ‘제동’
계층간 격차 축소 목표에도 조합원 재산권 침해 논란
공공성·형평성 명분에도 수익성 악화에 역차별 우려
서울시가 사회계층간 격차를 허물기 위해 추진 중인 ‘소셜믹스’가 도심 내 정비사업 추진의 돌발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시는 공공성과 형평성이라는 명분 아래 임대가구와 분양가구 간 ‘완전혼합’을 요구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재산권 침해, 수익성 악화 등의 이유로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23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가 최근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과 관련, 소셜믹스 차원에서 “한강변 주동에 임대주택을 배치하라”고 요구한 데 대해 조합원들 사이에선 “수억원씩 프리미엄이 붙는 한강 조망권을 임대가구가 가지는 건 사실상 재산권 침해, 역차별”이란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21년 10월부터 서울 시내 모든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임대주택 소셜믹스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소셜믹스 도입에도 사회 계층의 벽은 더 부각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임대주택은 분양주택과 동 색깔을 달리하거나 같은 단지 내에서도 저층과 같은 불리한 입지에 배치됐다.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사이에 도로를 만들어 출입구부터 구분해 애초에 다른 아파트처럼 인식되도록 한 것이다. 또 분리수거 장소, 자녀의 통학길조차 섞이지 않도록 분리하고 정화조, 저수조, 펌프실 등 주민기피시설을 임대주택 단지로 몰아넣은 사례도 나왔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2022년부터 임대가구와 분양가구 간 어떠한 구분도 할 수 없도록 ‘완전혼합’ 형태로 소셜믹스를 개선했다. 저층 배치와 강·하천 조망권 배제 등 차별 요소를 퇴출하기 위해 임대가구는 전체 동에 고르게 분포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는 지난달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에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안건을 보류한 상태다.
서울시는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한강변 주동에 공공임대 미배치 계획 외에도 주동 저층부에 주로 배치한 것과 복합 용지 내 편중되게 과다 배치한 계획 등 차별적 요소가 많다”며 “이를 개선해 소셜믹스 취지에 적합하도록 재검토를 요청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층수따라 수억원씩 웃돈…공공임대 배치는 재산권 침해 ‘불만’
“제대로 된 기준 마련, 임대주택 인식 개선도 필요”
조합이 제출한 기본 계획안은 임대가구가 대부분 단지 내 저층부와 비선호 동에 몰려있다. 한강변과 접한 4개 주동에 임대물량은 없었다.
조합은 시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존 11개동에 흩어진 임대가구를 6개동으로 줄이고 일부를 한강 조망이 가능한 주동 고층에 다시 배치했다. 평면도 중대형 물량까지 확대 조정했다.
조합원들은 시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기준을 적용한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고층이나 한강뷰 아파트를 임대 물량으로 돌리는 건 사업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단 지적이다. 한강 조망권에 따라 저층과 고층 간 수억원 씩 프리미엄이 발생하는데 임대 주택에 조망권까지 챙겨주는 건 지나치단 목소리도 있다.
한 재건축 단지 조합원은 “사업성 개선을 위해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용적률을 올려주면서 실질적으로 수익에 영향을 주는 부분에 대해선 모르쇠한다”며 “소셜믹스가 문제라기보다 기존 살던 주민들의 재산권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지 않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부동산) 시장도 안 좋고 가뜩이나 공사비가 오르고 조합원 분담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분양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핵심 물량을 임대로 배치하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추진 시 사업성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소셜믹스 도입에 앞서 제대로 된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임대주택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는 견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재건축·재개발은 결국 조합원들 개개인이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사유재산권에 대한 우선권을 행사하는 건 당연하다”며 “소셜믹스는 바람직한 정책이지만 지나친 행정 남용으로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그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내가 사는 곳에 그대로 내가 분양 받는 ‘제자리 입체 환지’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해당 방식으로 하되 정부나 시가 지원해주는 만큼 용적률을 올려주거나 완화해준 만큼 여유 분에 대해서 임대 주택을 일부 짓는 것으로 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권 교수는 “부동산은 공공성과 사회성을 지니기 때문에 용적률을 완화하고 층수를 올려준 만큼 공공성 기여는 해야 한다”며 “옆집이 전·월세일 때는 문제가 안 되는데 임대주택일 때 문제 삼는 건 결국 ‘님비’로 볼 수밖에 없어 전반적인 의식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도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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