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등으로, 탄핵 촛불로…‘응원봉’의 화려한 변신 [이게 굿즈라고?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5.09 08:41  수정 2025.05.09 08:41

'응원' 넘어 '공연 연출 도구'로 보편화

일상생활서도 사용 가능한 '실용적 가치' 부여

탄핵 집회 땐 '응원봉 대란' 일어나기도

아이돌 굿즈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팬덤 외부의 일반 대중에게까지 소구하는 실용적이고 디자인적인 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굿즈의 변화 속에서 케이팝(K-POP) 팬덤 문화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은 단연 ‘응원봉’이다. 공연장을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이며 팬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응원봉은, 이제 그 본연의 기능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며 우리의 일상과 때로는 사회 현상 속에서도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tvN

응원봉의 탄생은 케이팝 공연 문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초기에는 각 팀의 상징색을 담은 풍선이 응원의 도구로 사용됐다. H.O.T는 흰색, 젝스키스는 노란색, S.E.S는 보라색, 핑클은 빨간색, 신화는 주황색, 지오디는 하늘색 등의 풍선을 썼다.


이후 문희준이 솔로 데뷔 당시 일반 야광봉을 사용했고, 세븐이 야광봉을 자신의 시그니처 모양인 ‘7’자로 꺾으면서 한국 최초 콘셉트 응원봉이 만들어졌다. 이후엔 순차적으로 조금 더 콘셉트화된 응원봉이 나타났는데, 그룹 빅뱅의 공식 응원봉인 ‘뱅봉’이 현재의 응원봉 형태의 시초로 분류된다.


응원봉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공연장에서의 ‘응원’ 그 자체에 있다. 수많은 팬이 동일한 디자인과 빛깔의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며, 팬들에게는 강력한 소속감과 일체감을 선사한다. 특히 근래에는 블루투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중앙 제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응원봉은 공연 연출 도구로서도 보편화됐다.


지드래곤 응원봉 '데이지봉' ⓒ갤럭시코퍼레이션

현재 응원봉은 공연장에서만 빛을 발하는 도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팬들의 일상에 파고들면서 예상치 못한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드래곤의 응원봉을 들 수 있다. 지드래곤은 자신의 시그니처인 데이지꽃 모양의 응원봉을 선보였는데, 화분 모양의 전용 크래들에 꽃 모양의 응원봉을 꽂으면 무드등이나 간이 스탠드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는 응원봉이 공연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벗어나 일상생활에서도 실용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 시도다. 팬들 입장에서도 고가의 응원봉을 단지 공연 관람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밝히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며 아티스트와의 유대감을 일상에서 이어갈 수 있도록 한 점에서 매력적이다.


응원봉을 통해 팬들의 창의적인 활동을 유도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그룹 아일릿(ILLIT)의 응원봉은 팬들이 직접 내부를 꾸밀 수 있도록 투명한 돔 형태의 뚜껑이 분리되도록 제작됐다. 팬들은 이 공간에 비즈, 스티커, 작은 피규어 등을 넣어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응원봉을 커스터마이징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응꾸’(응원봉 꾸미기) 문화가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팬덤 내 새로운 놀이 문화로도 자리 잡았다. 기획사 역시 이러한 트렌드를 인지하고, ‘응꾸’를 염두에 둔 디자인이나 관련 액세서리를 함께 출시하며 팬들의 니즈에 부응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최근엔 일반인들 사이에서 ‘응원봉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3일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유발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시위의 상징인 ‘촛불’ 대신 다양한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이 등장한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어둠을 밝히고,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또 다른 도구로서 응원봉을 활용하면서 팬덤의 전유물이었던 응원봉의 의미가 확장한 사례로 기록된다.


젊은 세대들이 응원봉을 들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빛이 꺼지지 않은 응원봉의 특성과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청년들의 사회적 목소리의 상징이라는 점을 들어 함께 응원봉을 드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선 응원봉 거래가 활발했고, ‘응꾸’ 문화와 결합해 ‘응원봉’을 ‘탄핵봉’으로 꾸며 목소리를 담는 이들도 다수 보였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두 번째였던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 뒤에는서울역사박물관이 집회에서 사용됐던 물건을 수집하고 있는데, 피켓과 스티커, 계엄령 선포 관련 기사가 게재된 호외 신문 그리고 ‘응원봉’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현재의 역사를 후대를 위해 기록한다는 의미가 크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집회에서 촛불이 많이 활용됐는데 이번 탄핵 집회에선 가수 응원봉이 많이 보였다는 점에서 집회 문화의 변화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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