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조선소 정조준…글로벌 해운사 ‘탈중국’ 조짐
“中 제외 경쟁력 한국뿐”…공급망 재편 수혜 전망
보호무역 정책, 득인가 실인가…투자 압박 ‘새 변수’
미국의 대중 무역 압박이 선박 입항 규제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조선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K-조선은 당장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지만 정책 불확실성과 대미 투자 압력이라는 이중 과제에도 직면한 상황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기회와 부담이 맞물린 분기점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선업 재건 행정명령에 이어 중국산 선박에 대한 미국 항만 입항 수수료 부과 조치가 잇따라 발표되며 글로벌 해운사들의 발주처 다변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중국 해운사와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선박에 대해 미국 항만 입항 시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180일 유예 기간 후인 오는 10월 14일부터 시행되고 선박 톤수에 따라 연 최대 5회까지 적용한다. 이로 인해 주요 해운사들이 중국산 선박 도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1위 컨테이너 선사인 MSC의 발주 잔고 내 중국 조선소 비중은 97%에 달하며 하팍로이드(89%), 머스크(59%), ONE(58%) 등 주요 선사 역시 중국 의존도가 높다. 업계는 이번 제재가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촉진해 한국과 일본 조선업계에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중국 조선업의 수주 감소세도 감지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중국 조선소의 벌크선 수주량은 143건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90.9% 급감했다. 공급망 이동의 신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2021년 59.5%였던 중국의 컨테이너선 수주 점유율은 지난해 87.8%까지 치솟았지만 이번 제재를 계기로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같은 흐름 속에 국내 조선업계는 주력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선과 특수선 중심으로 수주 협상을 가속하고 있다. HD현대는 최근 그리스 해운사 캐피탈마리타임과 20척 규모 컨테이너선 발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에버그린으로부터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을 척당 3881억원에 수주하며 역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박현준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책임연구원은 “향후 주요 선사들이 중국 발주를 지양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LNG 신규 프로젝트 재개와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및 건조 아웃소싱이 증가할 것”이라며 “중국을 제외한 조선국 가운데 사업경쟁력이 우수한 한국에 중장기적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변동성과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동맹국을 향한 역내 투자 압력으로 작용할 경우, 새로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내 생산설비 구축 요구가 강화되면 조선업계에 직접적인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미국 내 선박 수요를 명분으로 현지 생산 기반 구축 압력이 현실화되면 국내 기업 입장에선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확실히 조선업에 호재인 건 맞지만 조만간 ‘이 정도 해줬으니 뭔가 내놔라’는 식의 역제안이 나올 수도 있다”며 “미국이 조선 부흥의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한 만큼 현지 투자나 생산시설 유치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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