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젊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며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자본보다는 정체성과 예술성을 앞세운 영화로 국제 무대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이자 신예 감독 네오 소라는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해피엔드'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AI와 지진이라는 요소를 청춘 드라마와 결합해 독창적인 서사로 완성해냈다. 이는 미야케 쇼, 하마구치 류스케 등 일본의 기존 작가주의 감독들이 구축해온 흐름을 자연스럽게 잇는 동시에, 새로운 감수성과 시대 인식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은 상업적 자본보다는 창작자의 독자적 시선을 중심에 둔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구조를 형성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하마구치 류스케와 함께 미니 시어터 살리기 운동인 '미니 시어터 에이드'를 벌여 4억 엔이 넘는 기금을 모았던 사례는, 이러한 순환 시스템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구조적 기반 위에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야마나카 요코 감독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장한 사례다. 그는 '아미코'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최연소 초청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신예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감독주간에 초청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야마나카 요코의 '나미비아의 사막'은 그의 세계관과 연출 역량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일본 영화계는 젊은 감독들이 주도하는 예술영화의 흐름이 단절 없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칸 영화제에 진출한 일본 영화들도 이 흐름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경쟁 부문에 진출한 '르누아르'는 '플랜75'로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린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신작이며, 심야 상영 부문에는 가와무라 겐키가 연출한 호러 게임 원작 영화 '8번 출구'가 초청됐다. 이시카와 게이 감독 또한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모두 40대 감독으로, 일본 작가주의 영화의 세대교체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영화는 장기적인 위기론 속에서 여전히 상업성과 스타 캐스팅 중심의 기획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는 감독 개인의 세계관과 문제의식을 중심에 둔 영화들이 경쟁력을 갖고 국제 무대에 진출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한국영화가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 등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이지만, 이들의 데뷔 시기가 1990년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드러난다. 최근에는 한국 독립영화조차 안정적인 제작과 배급의 기회를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작가주의 감독이 탄생하기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미쟝센단편영화제가 4년 만에 부활한다는 단비 같은 소식은 주목할 만한 반등의 계기를 예고한다.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영화제가 올해 다시 시동을 걸며, 사회 드라마, 멜로, 공포 등 장르 섹션을 중심으로 신인 감독들의 실험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올 예정이다.
2025년 하반기 개최를 목표로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엄태화, 윤가은, 이상근, 이옥섭, 장재현, 조성희, 한준희 등 차세대 감독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주목된다.
일본 영화계는 작가주의 감독들의 연속성과 국제적 확장력을 통해 그 자체로 국가의 영화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영화 역시 지금이야말로 그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다음 세대 작가들을 위한 시스템 개편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감독이 영화산업 전체에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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