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설계 업체가 상세설계‧초도함 담당 관례…HD현대 유리
보안사고 감점 1.8점은 치명적…한화오션 '싹쓸이' 가능성도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수행한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조감도. ⓒHD현대중공업
군사기밀 유출로 물의를 빚은 HD현대중공업이 정부 발주 방위사업 입찰 자격을 유지하면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놓고 한화오션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27일 계약심의회를 열고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했다.
2030년까지 6000t급 구축함 6척을 발주하는 KDDX 사업은 총 사업비가 7조8000억원에 달한다. 국내에서 이정도 규모를 건조할 수 있는 조선업체는 HD현대와 한화오션 뿐으로, KDDX 사업 수주 여부에 양사 특수선 사업 실적이 좌우되는 만큼 수주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군사기밀 유출과 관련된 패널티 요인을 제외하면 이번 KDDX 사업은 HD현대 측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잠수함을 제외한 특수선 분야에서 HD현대와 한화오션은 비등한 수준이지만, 사업의 연속성 측면에서 중요한 기본설계를 HD현대가 담당했기 때문이다.
통상 함정 건조는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KDDX 사업의 경우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맡았지만, 기본설계는 HD현대가 수행했다.
과거의 관례를 보면 함정 건조 사업에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행 방위사업관리규정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으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까지 맡도록 하고 있다. 개념설계는 일종의 ‘밑그림’이기 때문에 이후 사업과의 연속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HD현대 관계자는 “사업의 연속성 측면에서 기본설계와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까지 이어지는 게 일종의 프로세스였다”면서 “상세설계 단계에서도 입찰을 하긴 하지만, 기본설계 과정에서 문제가 없으면 업체를 도중에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통상 기본설계는 2년 정도 걸리지만, KDDX의 경우 2020년 HD현대가 낙찰받아 지난해 12월 기본설계를 완료하기끼자 꼬박 3년이 소요됐다. ‘한국형’으로 명칭이 부여된 사업의 경우 체계·장비 대부분을 국산화하느라 연구개발 과제가 많고 체계종합의 복잡성도 높은 탓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기본설계 과정에서 많은 연구기관과 관련 업체들의 협업체계가 구축됐고, 참여한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의 학습도 상당 부분 이뤄졌다. 소요군도 요구조건 충족 여부 등을 검토하면서 같이 협업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상세설계 업체가 달라지면 원점에서 학습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등 상당한 혼란이 생기면서 사업의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함정 건조 사업은 기본설계로부터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까지를 하나의 연구개발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기본설계 과정에서 특별한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 한 상세설계 단계에서 업체를 변경하는 사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소수점 두 자릿수 차이로 등락 갈리는데…HD현대, 2025년까지 1.8점 감점 안고가야
문제는 HD현대가 2025년까지 방위사업 입찰에서 1.8점의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받는다는 점이다. 통상 소수점 이하의 점수차로 당락이 갈렸던 전례를 감안하면 1.8점은 치명적 패널티다.
실제 2020년 HD현대가 KDDX 기본설계 사업을 따낼 당시 한화오션에 고작 0.056점 차이로 앞섰었다. 당시는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기소만 돼있었고, 방사청에서 HD현대에 대해 감점을 적용하진 않았었다.
반면, HD현대가 1.8점의 감점을 적용받은 지난해 말 이뤄진 ‘울산급 배치3’ 5‧6번함 경쟁입찰에서는 한화오션이 0.14점 차이로 승리했다. 그만큼 1.8점의 차이가 크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상세설계 입찰에서 HD현대가 기본설계 베네핏을 적용받아 승리할 경우에도 초도함까지만 건조하고, 이후 3척 가량은 한화오션이 가져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후속 물량 발주에서는 HD현대가 베네핏 없이 감점만 적용받을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HD현대는 감점 적용 기간인 2025년 이후 발주가 예상되는 나머지 2척에 다시 도전해야 할 형편이다.
실제, 방사청은 공급선 다양화 측면에서 선도함 이후 물량은 다시 입찰을 진행해 여러 업체로 분산시키는 패턴을 보여 왔다. 울산급 배치3 호위함의 경우 기본설계와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는 HD현대가 맡았지만, 2~4호선은 SK오션플랜트(옛 삼강엠앤티), 5~6호선은 한화오션이 낙찰 받았다.
기본설계 베네핏보다 1.8점의 감점이 더 크게 작용해 한화오션이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맡을 경우 KDDX 사업 전체를 한화오션이 싹쓸이하는 그림이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방사청이 HD현대의 입찰 참가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줬지만, 군사기밀 유출로 논란이 된 업체에 KDDX 사업을 맡기기엔 부담이 클 것”이라면서도 “기본설계 업체를 상세설계 단계에서 교체할 경우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인 만큼 고심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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