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정 단독 대표 체제 SK하이닉스, 적자 탈출·HBM 선두 '특명'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3.12.07 14:47  수정 2023.12.07 15:22

SK그룹 사장단 및 임원 인사…곽노정 단독 대표 체제 구축

반도체 업황 부진 속 적자 탈출 및 HBM 초격차 기술 '특명'

혁신 경영 위한 젊은 피·기술 인재·여성 임원은 지속 발굴

SK하이닉스 곽노정 사장이 10월 11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초기술로 세상을 더 행복하게’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하고 있다.ⓒ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대표이사가 박정호 부회장·곽노정 사장 체제에서 곽노정 사장 체제로 재편됐다. 곽 사장은 반도체가 회복 사이클에 진입하기까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한편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차세대 기술 개발·투자를 주도함으로써 사업 조기 정상화를 이끌 중임을 부여받았다.


SK그룹은 7일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대부분을 교체했다. 앞서 최태원 회장이 지난 10월 'SK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폐막 연설에서 '서든데스(Sudden Death, 돌연사)'를 꺼내든 이후 그룹 내 경영진 교체폭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반도체 부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이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SK하이닉스는 곽노정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그간 곽 사장과 함께 SK하이닉스를 이끌었던 박정호 부회장은 부회장직은 유지하되 대표이사 자리는 내려놓게 됐다. 앞으로 그는 SK하이닉스 부회장이자 SK㈜ 부회장으로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AI 얼라이언스(Alliance)를 이끌며, AI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미래 성장동력 확충에 주력할 방침이다.


내년 SK하이닉스는 곽 사장의 지휘 아래 반도체 턴어라운드를 앞당기는 한편 엔비디아 등 글로벌 고객사와의 관계 구축, 차세대 기술 개발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인사에 대해 SK하이닉스는 "올해 도전적인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당사는 다운턴 위기를 이겨내면서 HBM을 중심으로 AI 메모리를 선도하는 기술 경쟁력을 시장에서 확고하게 인정받았다"며 "이런 흐름에 맞춰 이번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통해 회사의 AI 기술 경쟁력을 한층 공고히 하는 한편, 고객 요구와 기술 트렌드에 부합하는 혁신을 선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SK하이닉스는 'AI 인프라' 조직을 신설했다. AI 인프라 산하에 지금까지 부문별로 흩어져있던 HBM 관련 역량과 기능을 결집한 'HBM 비즈니스'가 신설되고 기존 'GSM(글로벌 세일즈&마케팅)' 조직도 함께 편제됐다. AI 인프라는 GSM 김주선 담당이 사장으로 승진해 맡게 된다.


아울러 AI 인프라 조직 아래 'AI&넥스트' 조직이 신설돼 차세대 HBM 등 AI 시대 기술 발전에 따라 파생되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 개척하는 패스파인딩 업무를 주도하기로 했다. 패스파인딩은 출발점과 목적지 사이 경로를 찾는 과정을 말한다.


미-중 갈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대외 환경에도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기존 '글로벌 오퍼레이션 TF'와 관련 조직 및 인력을 '글로벌 성장추진' 산하로 재편했다.


SK하이닉스가 이번 조직 개편에서 차세대 기술 경쟁이 치열한 HBM 등의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AI 인프라' 조직을 만들고 글로벌 대응능력도 한층 강화한 것은 초격차 기술에 속도를 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장악력을 확대하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역량을 높일수록 적자 탈출 시기도 그만큼 앞당길 수 있다.


올 3분기 누계 영업손실만 8조원에 달하는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불황 지속으로 4분기에도 적자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익성이 높은 HBM 판매 호조로 D램 사업은 흑자로 돌아섰지만 낸드 제품은 수요 약세로 판매량과 가격이 모두 떨어지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3분기 재무지표도 다소 악화됐다. 3분기 말 현금(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은 8조5300억원으로 전분기와 비교해 1조400억원 늘었으나 차입금이 늘어나며 단기차입금·유동성장기부채·사채 ·장기차입금을 합친 차입금 규모는 7500억원 증가한 31조5600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차입금비율은 전분기 54%에서 3분기 57%로 3%p 늘었다. 순차입금비율은 42%다.


적자 고리 요인으로 지목되는 '자회사 정상화'는 풀어야 할 숙제다. 앞서 SK하이닉스는 2021년 12월 인텔의 낸드 사업 부문 1단계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고 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을 출범시켰다. 총 인수 규모는 88억4400만 달러(11조3000억원)이며 이중 약 66억 달러를 지급했다. 잔금 22억3500만 달러는 2년 뒤인 2025년 3월까지 지급할 예정이다.


11조원짜리 낸드 사업부 인수는 D램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전 대표는 2020년 인수 발표 당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 고부가가치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는 낸드 사업에서 D램 못지않은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다만 인수 이후 메모리 시황이 크게 고꾸라지면서 SK하이닉스의 낸드 사업은 난관에 봉착했다.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 회복, 그에 따른 제품가 정상화가 시급하지만 아직까지 긍정적인 시그널은 없는 상태다. 최태원 회장은 10월 CEO 세미나에서 "SK가 여러 곳에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철저히 검증하라"며 '솔리다임'을 예시로 든 것으로 전해진다.


단독 대표로서 SK하이닉스를 이끌게 된 곽 사장은 솔리다임을 비롯해 부진한 낸드 사업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비용 절감 및 비효율성 제거에 더욱 앞장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설명회에서 솔리다임에 대해 효율성 위주 운영에 나서겠다고 밝혔었다.


회사측은 "감산, 인력 구조조정 통한 비용절감, 본사와의 중복 비효율성 제거 위한 노력을 진행해왔다. 앞으로는 시황 개선과 맞물려 솔리다임 강점인 다양한 고객 기반과 펌웨어 기술력을 본사 역량과 합쳐 eSSD 로드맵 최적화와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SK하이닉스는 낸드와 솔루션(Solution) 컨트롤 타워인 ‘N-S Committee’를 신설, 낸드와 솔루션 사업 경쟁력 제고에 나서기로 했다.


낸드 사업과 달리 AI용 메모리인 HBM3, 고성능 D램인 DDR5, LPDDR5 등을 중심으로 실적 개선이 뚜렷한 D램 사업은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해 곽 사장이 속도감 있는 경영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 사장급 조직인 'AI 인프라'를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HBM3e를 개발하는 등 AI 시대에 가장 수혜를 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AI 분야 데이터 처리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주로 탑재되는 HBM은 무게추가 HBM2e(3세대)에서 HBM3(4세대)로 옮겨가면서 HBM 강자인 SK에 글로벌 고객사들의 러브콜이 집중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성장률 60~80%로 보고 있다"면서 "HBM3와 HBM3e를 포함해 내년도 캐파는 현 시점에서 솔드아웃됐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리 HBM3e 캐파 점유율은 압도적으로 높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HBM 등 고부가 D램 호황기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 SK하이닉스는 주력제품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D램 10나노 4세대(1a)와 5세대(1b) 중심으로 공정을 전환하는 한편, HBM과 TSV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TSV(Through Silicon Via)는 D램 칩에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상층과 하층 칩의 구멍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으로 연결하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을 말한다.


이 같은 투자 로드맵을 제대로 이행하고, 동시에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구축하는 것에 곽 사장이 힘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사에서 기술 혁신을 주도할 3040 인재들을 속속 발탁하며 체질변화를 시도했다. 높은 기술 역량을 갖춘 여성임원으로 오해순 연구위원이 발탁됐으며 길덕신 연구위원은 소재개발 관련 최고 수준의 전문가임을 인정 받아 수석 연구위원으로 승진했다. 올해 최연소 임원에는 1983년생 이동훈 담당이 이름을 올렸다.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통해 당사는 고객별로 차별화된 스페셜티(Specialty) 메모리 역량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이끌어가는 AI 인프라(Infra) 핵심 기업으로 진화,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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