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폭력이 만들어 낸 '괴물' [불 만해?]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3.11.29 08:23  수정 2023.11.29 08:24

29일 개봉

일본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를 비극적인 상황에 던져놓은 후 관용을 외면하고 혐오를 남발하는 사회적 문제를 수면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장기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번에는 사카모토 유지 작가와 함께 공기처럼 붙어있는 편견이 약자에게 어떤 생채기를 내는지 보여준다.


히이라기 히나타, 쿠로사와 소야ⓒ'괴물' 스틸컷

'괴물'은 한 가지 사건을 세 사람의 시선을 보여주며 관객이 '괴물은 누구인지' 진실을 파헤치도록 함정을 판다.


첫 번째 시선은 초등학교 5학년 미나토(쿠로사와 소야 분)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 분)이다. 남편을 먼저 보낸 후, 세탁소에서 일하며 가정을 책임지는 사오리의 단 한 가지 소망은, 아들 미나토가 평범한 가족을 만드는 날까지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다. 모자 가정으로 평범함이 결핍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들만은 '남들처럼' 무탈하게 살길 바란다.


그런 아들이 어느 날부터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인간일까?"라고 묻는가 하면 혼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운동화 한 켤레도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담임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분)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돼지 뇌를 가졌다"라고 말했다고 털어놓는다.


사오리는 당장 학교에 찾아가지만 호리 선생의 태도는 어딘가 이상하며, 교장(다나카 유토 분)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사건을 되풀이할 뿐이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사람 같지가 않다. 사오리의 눈에는 학교 선생님들이 '괴물' 그 자체다. 그런데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가 친구 요리(히이라기 하나타 분)을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시선은 호리 선생으로 이어진다. 무언가에 빠지면 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 호리 선생은 아이들이 올바른 학생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히고 있는 걸 목격해 말리던 중 팔꿈치가 미나토의 얼굴을 가격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미나토는 자신에게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학교 선생님들은 일이 커질까 봐 호리 선생에게 사과를 강요한다. 여자친구도 떠나가고 주간지에 신상까지 털려 학교에서 정직 처분까지 받았다. 호리 선생은 거짓말쟁이 학생으로 인해 삶이 나락으로 추락했다.


마지막은 시선은 사건 당사자인 미나토로 옮겨진다. 미나토가 요리와는 어떤 친구 관계인지, 엄마와 어른들에게 왜 거짓말을 했는지 퍼즐이 맞춰진다. 진실을 말하면 자신은 평생 행복할 수 없을 것 만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에 청소년 성소수자로 시선을 확장했다. 버려진 기차 안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질 때, 가장 해맑게 웃는 미나토와 요리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무지와 오해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괴물'을 찾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은 스스로를 '괴물'이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영화 속 특정한 소재를 떠나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했던 말 한마디들이, 당사자들에게 폭력이 되는 사회적 통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태풍이 불어닥친 날 사라진 미나토와 요리를 찾아헤매는 사오리와 호리 선생. 자꾸만 기차를 묻어버리는 진흙과 빗방울을 손으로 긁어내지만 다시 쏟아붓는 탓에 창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이는 여전히 사회의 단단한 편견이 빗방울로 표현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 그들을 어둠 속에서 구해주려는 어른이 있다는, 중의적인 메시지로 보인다.


특히 가장 먼 존재처럼 여겨졌던 미나토와 교장과 금관악기를 불며 서로의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악기 소리로 토해내는 장면 역시 누군가의 구원의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로 던지는 메시지는 정확하지만, 시선은 기울지 않는다. 이면의 것들을 담백하게 꺼내놓을 뿐이다.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후 다시 해가 떴다. 미나토와 요리는 "우린 다시 태어난 걸까"라고 말한다. 결말은 각자 해석에 달렸다. 미나토와 요리가 앞의 불안과 고통을 잊은 듯이 해사하게 웃는다. 아이들은 미소 짓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만 무거워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카모토 유지의 '아쿠아'가 아름답고 애틋하게 울려 퍼진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제 '아쿠아'를 들을 때마다 진흙이 잔뜩 묻은 채 다시 태어난 미나토와 요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우리는 여전히 아무도 모르지만, '괴물'이라는 좋은 영화를 통해 그렇게 어른이 된다. 29일 개봉. 러닝타임 1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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