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중동 남자의 겉과 속

입력 2005.01.21 08:07  수정 2005.01.21 08:07

‘솔빛별가족’ 세계여행기(211)-시리아 다마스커스(2) / 노명희

사우디 아라비아 남자에게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내민 손도 부끄럽고 진짜 너무 황당했다. 그런가 하면 시리아 국경 마을 알레포에서는 반대로 남자에게 가벼운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중동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이런 황당 사건과 만나게 된다.

시리아 국경마을 알레포에서 모스크를 구경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너무 예쁘게 생긴 아이들 둘을 데리고 모스크를 찾은 어느 일가족이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예뻐 아이들과 장난을 주고 받다가 어른들과도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런데 어른들의 복장이 볼 만하다. 우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남자의 복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수단에 새하얀 두건을 둘렀고 여자의 복장은 정반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휘감았는데 둘 다 전형적인 아랍 복장이었다. 골수적인 이슬람 신자들인가 보다. 그 열성도에 따라서 가리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여자는 얼굴까지도 검은 천을 드리워 완벽하게 다 가려버렸다. 보통 눈알 정도는 내놓는데 온통 얼굴을 덮어버리고 손에는 장갑까지 끼고 있다. 아이들 얼굴로 미루어보아 예쁜 얼굴의 여인일 것 같으나 도무지 볼 수가 없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어디나 자기 자식 예쁘다고 하면 싫어하는 부모가 없다. 솔빛별이 그 아이들을 너무 예뻐하며 같이 놀자 기분이 좋아진 남자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친해져서 사진도 함께 찍었다. 보통 이런 완고한 복장을 한 여인들은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되게 좋긴 좋았나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사진 찍는 순간 여자의 얼굴이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한 것이다. 웃고 있어도 보이지가 않으니 말이다. 나중에 사진을 현상해봐도 얼굴표정이 없으니 별 보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사진찍기를 싫어하는 건가?

어쨌든 한참 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는 이 남자에게 잘 가라며 무심코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남자가 당황해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러며 손을 휘휘 젓는다. 나랑 악수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부인이 옆에서 보고 있다나… 자기 대신 옆에 서 있는 부인과 하라고 한다. 에고… 쪽팔려라...

부인을 네 명까지 거느릴 수 있는 건 뭐고 부인 앞에서는 다른 여성과 악수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참 헷갈렸다…

성추행(?) 사건은 이렇다. 배낭을 짊어지고 다마스커스로 가기 위해 터미널을 찾아 가고 있었다.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라서 쿠바마냥 범죄나 위험한 사건이 오히려 더 잘 안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회색빛으로 둘러 쌓인 낡은 건물들과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 거리의 사람들, 그리고 무질서한 차들 사이로 휘날리는 쓰레기들을 보고 있으면 밝은 아침인데도 마음은 긴장이 된다.

터미널을 몰라 몇 사람에게 물어봐가며 가고 있는데 왠 못생긴(?) 사람이 자꾸 옆에 붙어 따라오며 말을 건다. 워낙 그런 사람이 많으니 그런가보다 하고는 처음엔 몇 마디 인사로 대꾸를 해주었다. 그런데 계속 따라온다. 가는 방향을 안다고 해도 아랑곳이 없다. 그리고는 자꾸 내 뒤로 가까이 오곤 한다. 무슨 물건을 도난당할까봐 걱정해 식구들이 바짝 따라붙으면 멀어졌다가 또 가까이 오고…


왠지 좀 이상하지만 지니고 있는 짐에만 신경을 더 쓰며 10여분을 부지런히 걷자 드디어 터미널이 보였다. 다행이다 싶어 안심을 하며 신호등 앞에서 잠시 서 있는데 드디어 이 남자가 동작을 개시했다. 내 짐을 뺏은 게 아니라 내 엉덩이를 슬쩍 만지고 달아난 것이다. 자기 딴에 잽싸게 치고 달리기를 한다는 게 너무 동작이 오버되어 차가 오는 도로쪽으로 내가 기우뚱 넘어지려고 하자 온식구가 무슨 일 난 줄 알고 소리를 빽 질러대고 그 남자는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치고, 거리의 사람들은 다 쳐다보고…

아이들이 덩치가 커서 어른처럼 보이니 사람들이 가족인 줄을 잘 모른다. 심지어 가족이라고 말을 해줘도 처음엔 믿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 모습이 영락없는 무슨 단체 여행자쯤으로 보이나 보다. 심지어는 남편더러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다.

“부인이 몇 명입니까?”
그래서 그런지 중동남자들의 쳐다보는 시선이(여자 네 명만) 장난이 아니다. 설사 가족임을 알아도 그 눈빛은 여전하다. 이슬람 규범에 남의 아내를 넘보지 말라는 내용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없는 건지 아예 거의 노골적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러니 중동지역을 싱글로 혼자다니는 처녀들은 엄청 스릴(?) 있을 것 같다. 호기심에서 보는 정도라고 하기에는 그 눈빛이 너무 능글거려 같이 쳐다보고 웃어줄 수가 없다. 마구 추파를 던지는 듯하니 되레 더 표정이 쌀쌀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흔히 남녀간의 애정관계를 얘기할 때 눈이 맞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 정도로 한국인들은 서로간의 눈빛을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남녀는 서로 잘 안쳐다 본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최대한 무표정하게 눈을 돌리기 바쁘다. 그런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사람들이라 처음 외국을 나오면 당황하는 게 바로 이 눈인사이다. 서양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외국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잘 웃기 때문이다. 처음엔 저 사람 나랑 아는 사람인가 착각도 하나 그쯤은 금방 숙달이 되며 자연스러워지는데 여기 남자들의 눈빛은 확실히 그 정도가 심하다.

나름대로 그러한 배경이 있다고 하는데 이슬람 문화권 안에서 모든 면에서 유난히 폐쇄적인 주위의 여성들을 보고 살다가 거침없는 외국여자들의 모습을 보니 여자들이 성적인 대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의사표현이 확실한 서양여자들에 비해서 동양여자들은 표현이 소극적인 편이라 더 그 호기심의 대상이 되나보다.

또 하나는 연애결혼이 아닌 바에야 결혼을 하려면 남자가 일정액을 여자 집에 주고 사오는 결혼 풍속도가 있어서 돈이 없으면 아예 결혼도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네 명은커녕 한명의 여자도 없는 늙은 남자들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여기 남자들은 한국여자랑 결혼하는 게 꿈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곤 한다.

실제로 여자들 두세 명을 거느리고 유람을 다니는 돈많은 아랍남자들을 가끔씩 보곤 했다. 복장을 보니 석유가 많이 나는 사우디나 쿠웨이트쪽 남자들 같은데 양 옆으로 나란히 다니는 모양을 살펴보니 부인들임이 분명했다. 이들은 우리와는 역시 다르게 대형호텔을 들랑거렸는데 참 사이들도 좋지. 남자는 그렇다 치고 여자들은 뭐가 좋다고 함께 저러고 다닐까 싶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건지… 갑자기 잠은 어떻게 자는지 궁금해졌다. -_-;;


어쨌든 아이들이 난생 처음 자기를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자들을 보고는 기가 막혀 한다. 나야 결혼한 어른이니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뭐 그 정도쯤이야 솔직히 많이 싫지도 않다. 한국에 가면 누가 그리 나를 살뜰히 쳐다보겠는가!) 소녀인 아이들은 요즘 분개를 하고 야단이다. 어떻게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나를 저렇게 쳐다보냐는 것이다. 중학생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눈빛임이 분명한 것 같다. 나 또한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은 참을 수 있겠으나 아이들을 그렇게 보고 있으면 화가 나니까.

중동에 온 이후로 요즘 남편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남자라고는 한명인데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 속에서 여자 네 명을 보호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빠라고 말해도, 남편이라고 말해도 그 응큼한 눈빛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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