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극적인 실화…담담하고 뜨겁게 태극기를 달고 뛰는 '1947 보스톤' [볼 만해?]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3.09.27 14:44  수정 2023.09.27 14:44

강제규 감독 연출

1947년 4월 19일, 이제 막 독립한 작고 가난한 나라의 선수가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2시간 25분 39초의 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서윤복 선수와 손기정 감독은 한국 최초로 태극기를 달고 나가 우승한 한국인의 첫 사례였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들의 이야기가 2023년 강제규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보스톤 국제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세 명의 남자는 절박하다. 손기정 감독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2시간 29분 19초 마라톤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지만,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려 조선총독부로부터 육상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핍박을 받아왔다.


그와 함께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딴 남승룡은, 월계수가 금메달리스트에게만 주어져 일장기를 가릴 수 없어 슬펐다.


서윤복은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아왔지만, 손기정, 남승룡의 제안으로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그의 꿈은 '제2의 손기정'이었다.


국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담긴 돈들을 지원 받아 보스톤에서 조국의 국기를 달고 뛰겠다는 다짐을 했건만, 주최 측은 이제 막 독립한 한국이란 나라를 국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단다. 일본의 통치 아래서 벗어난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미국의 성조기를 달고 뛰라는 통보를 받는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라는 가장 어두운 시절에, 우리나라의 시대적 역사와 개인이 맞이한 비극적인 사건 등을 소위 말하는 '신파' 무드를 최대한 지양했다.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인간적인 드라마까지 깊게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인물의 서사는 최대한 담백하게 끌어냈다.


반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서윤복 선수의 마라톤 장면은 뜨거운 감동을 최대치로 끌어 오른다. 성조기를 달고 뛸 뻔 했지만 또 다시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없는 손기정 감독과 태극기를 달고 뛰며 개인이 가진 한계까지 뛰어넘는 서윤복 선수의 여정이 한 갈래로 모여 우승이자 도착지점이 도달한다. 결과를 알고 보고 있지만 손에 땀을 쥐고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임시완은 외형부터 내면까지 서윤복 선수 그 자체가 돼 관객을 1947년,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가 준다. 운동과 식단으로 체지방 6%를 만든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실제 마라토너들이 받는 훈련을 받아 당시 마라토너들의 뛰는 방법을 배워 재현했다. 하정우의 존재감에 밀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스펙트럼을 또 한 번 넓혔다.


하정우는 손기정 감독이 가진 기질을 특유의 연기력을 소화했다. 일장기를 달고 일본식의 이름으로 불리며 고개를 들지 못한 손기정의 얼굴부터, 서윤복을 마라톤 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한 고군분투, 더 나은 선수로 만들기 위한 채찍질, 마라톤 대회 위원회 앞에서 조국의 의미를 묻는 모습까지 적재적소에 맞는 얼굴을 꺼내들었다. 27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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