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다음은?’…식품업계, 정부발 가격 인하 압박에 전전긍긍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3.06.21 06:48  수정 2023.06.21 06:48

추경호 경제부총리, 라면업계 공개 경고

다른 식품 기업들도 눈치 싸움 본격 돌입

가격 인상 요인 ‘복합적’…인하는 ‘시기상조’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뉴시스

식품업계에 정부발 ‘가격인하 압박’ 공포가 퍼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18일 국제 밀 가격 인하를 근거로 라면업계에 대해 공개 경고를 하면서 식품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 5월 밀(SRW) 가격은 t당 228달러로 전년(419달러) 대비 45.6% 하락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국제 밀 가격이 폭등하면서 관련 물가도 치솟은 바 있으나 안정세를 되찾았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특정 품목의 가격에 대해 적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이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첫 번째로 라면을 지목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국제 밀 가격이 최근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소비자 가격에도 반영하라는 일종의 압박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 가격 인상 영향으로 라면업계의 올 1분기 실적이 좋아진 것도 가격 인하 요구에 힘을 싣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즉각적인 가격 인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제 밀 가격 하락이 곧바로 제품 원재료 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어도 제분회사가 밀가루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있는데, 라면회사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라면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이 올랐을 때 사 둔 밀 재고분이 3~6개월치가 남아 있어 이를 먼저 소진해야 한다”며 “밀값 상승과 라면 가격 인상에 시차가 있었던 것처럼 인하에도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한 빵 가게에서 직원들이 당일 만든 빵을 판매하고 있다.ⓒ뉴시스

이에 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내린 다른 식품업종으로 가격 인하 바람이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중이다. 실제로 13년 전인 2010년 당시, 라면 가격 하락을 시작으로 제빵·제과 등 식품기업들이 줄줄이 가격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는 게 식품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라면업계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 담합을 내세워 조사에 나서는 등 전방위적 압박이 펼쳐졌다. 이후 제과·제빵업계도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추 부총리와 정부는 지난해부터 식품·외식업계에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해왔다. 지난 2월에는 식품산업협회에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물가안정을 위한 '식품업계와의 간담회'도 개최한 바 있다.


제과·제빵업계는 추 부총리가 밀 가격인하를 근거로 삼은 만큼 다음 ‘타깃’이 빵·과자가 될까 예의 주시하고 있다. 1~2년 사이에 두 자릿수 넘게 오른 품목들이 이에 해당해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빵 물가는 1년 전과 2년 전보다 각각 11.3%, 11.5% 올랐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식품산업은 영업이익률이 1~2%에 불과하다"며 "기업 간 충성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하고 유통기업의 자체상표(PB) 상품에 대한 가격방어 차원에서 최소한만 인상했는데 정부가 압박을 하니 산업특성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거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제과업계 관계자는 “설탕 처럼 아이스크림에 많이 들어가는 원료 가격이 영향을 끼치는게 절대적이고, 이외에는 포장재 가격이라든지, 제조에 들어가는 인건비, 유통을 위한 물류비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소금을 비롯해 가격이 인상 가능성이 높은 설탕, 우유 등으로 인해 식품은 물론 외식가격 인상도 단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의 가격을 책정하는 기준은 인건비 물류비뿐 아니라 설탕하나 까지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다. 하나의 가격이 내린다고 제품 가격 역시 떨어질 순 없다”며 “오는 8월을 기점으로 원유값이 오르면 우유 가격이 인상되고 이와 관련한 품목들의 가격이 다시 한 번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제품 가격을 섣불리 내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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