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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美中사이 韓반도체, 세계를 쥘 기회"


입력 2023.04.03 06:00 수정 2023.04.03 10:19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삼성반도체 굴기' 시작부터 함께한 산증인

"미중 패권, 한국에 축복이자 기회" 사회에 일침

"한국 산업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잘 살려야"

국가적 차원의 인재 확보 중요성 재차 강조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데일리안 임채현 기자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데일리안 임채현 기자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오늘의 외부 환경은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내부적인 요인이 문제지, 미중 패권 경쟁 덕분에 한국은 반도체 산업으로 세계를 쥘 기회를 가졌다고 봅니다. 국민 소득 10만불 가능성이 열린 겁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규제로 한국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에 맞서 '이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를 지난 3월 31일 대치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 반도체 산업 역사를 기록한 저서 '히든 히어로스'의 저자이기도 한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그는 오늘날의 삼성 반도체를 있게 한 부천 사업장 시절부터 약 30여년간을 업계에 몸담은 인사다. 메모리와 시스템 조직을 모두 이끈, 국내 반도체 산업의 궤를 함께해 온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메모리 '굳히기' 들어가고 파운드리는 격차 좁혀야


가장 먼저 최근 미국 반도체법 시행으로 인한 공급망 변화, 그로 인한 세간의 우려에 대한 견해가 궁금했다. 임 전 사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최대 수혜자는 한국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선 메모리 측면에서는 한국이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고, 이 중 40%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셧다운 돼서 공급이 안 되면 파장이 크다"고 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우리가 중국의 생산 비중을 줄여나갈 수 있는 시간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생산 제품은 최첨단은 아니지만 대부분 구형(레거시) 공정 이상이기에 '10년 내 5% 확장' 규정이 적용된다. 중국 반도체 시설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다만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웨이퍼 한 장에서 얻는 반도체 양이 증가하기에 사실상 이같은 제한은 큰 타격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대중 장비 수출 통제도 10월까지 유예됐다. 임 전 사장의 관측을 덧대면 한국 메모리 주도권은 향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 그가 현 상황을 "세계를 쥘 기회"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 전 사장은 메모리보다 거대한 시장인 시스템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위탁생산)를 두고서는 '반사 이익'을 노려야 한다고 했다. TSMC와 인텔, 삼성의 3파전이 될 파운드리 시장에서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대만의 지정학적 이슈와 미국 기업 인텔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칫 삼성 입지가 줄어들 수 있지만, 엔지니어가 부족한 미국 산업 특성으로 인해 인텔도 쉽진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삼성이 원톱 TSMC를 추격하기엔 최소 20년이 걸릴 것이라 봤다. 그간 메모리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했던 삼성이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파운드리를 단시간에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삼성 파운드리는 독립 사업부로 나가야한다. 동시에 꾸준한 기술 개발로 압도적인 1등 TSMC와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관건이다. 10년 안에 파운드리 시장을 6(TSMC)대4(삼성)로만 가져와도 대성공"이라고 강조했다.


보조금보다 "같이 간다"는 메세지가 핵심


미국은 기업들이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웨이퍼 수율 공개' 등의 조건을 내단 상태다. 이를 두고 '독소조항'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그는 지난 수십년간의 업계 사례를 들어 "미국 방위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인데, 과거 일부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고 개발비를 왕창 부풀려 국방성에 팔아넘긴 전례들이 있다. 그런 문제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배경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물론 해당 정보가 우리의 경쟁사인 인텔 등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철저한 협상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얼마 안 되는 금액인 보조금은 핵심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미국 공급망과 '같이 간다'는 확실한 메세지만 주면 되는 겁니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내수 시장 규모가 커서 부품·소재를 싹 쓸어갑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먹을 게 없어요. 그에 반해 3억 미국은 하이테크 산업에서 한국, 일본, 대만이라는 파트너가 필요한데 이렇게 보면 역으로 미국이 우리에게 볼모로 잡힌 셈이라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국 생산은 원가 경쟁력 문제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중심이 우리 쪽으로 넘어올 거라 봐요. 결과적으로 미국이 중국 추격을 차단해주는 현 상황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3월 3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반도체 산업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데일리안 임채현 기자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3월 3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반도체 산업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데일리안 임채현 기자
"국민소득 10만불 시대 열 수 있는 문 앞에 왔다"


임형규 전 사장은 인터뷰 중반부 즈음 '글로벌 기업 지형'과 관련한 서류 여러 장을 책상 위에 꺼내 들었다. 그가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미래 첨단산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손수 만든 자료다. 그는 "1~4차 산업혁명기 탄생산업 전 분야를 통틀어 한국이 글로벌 톱3 경쟁력을 갖춘 분야가 전자·반도체·배터리뿐이다"고 했다. 한국이 전자·반도체 분야에서만 유일하게 메이저리그에 입성했기에, 어드벤티지를 살려야 한다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가 짚은 차세대 첨단 공학 산업은 반도체를 포함해 바이오, 정밀화학 등이다. 해당 산업들이 글로벌 정세, 모빌리티 혁명 등과 맞물려 우리에게 유리한 기회가 될 것이라 했다. 현 3만불인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을 10만불 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이공계 인재 부족이다. 그는 "대만의 경우 반도체 산업이 유일한 인재 확보 창구이자 국가적인 먹거리인데 반해 우리는 의대나 플랫폼 산업 등으로 인재 쏠림 현상이 지나치다"고 했다.


그를 위한 처우 개선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핵심 기술자, 즉 메이저리거들이 이 나라 산업을 지키고 있다"며 "주력 산업의 경쟁력 유지가 나라의 명운을 결정하는데, 이런 핵심 인력들에 개인의 성공과 함께 국가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인재를 뺏기게 된다. 대만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임 전 사장이 양향자 국회의원과의 대담 형식으로 집필한 저서 '히든 히어로스'. 해당 저서에서 임형규 전 사장은 '대세기술 필연산업'을 강조한다.ⓒ데일리안 임채현 기자 임 전 사장이 양향자 국회의원과의 대담 형식으로 집필한 저서 '히든 히어로스'. 해당 저서에서 임형규 전 사장은 '대세기술 필연산업'을 강조한다.ⓒ데일리안 임채현 기자


'대세기술 필연산업' 끌고갈 국가 차원의 인재 공급 중요


"저무는 기술로 낭비되는 인재가 많아요. 2010년대 스마트폰 시장이 확 커질 것이라는 걸 5~10년 전에 예측했듯, 한국은 산업화 국가라서 가능성 있는 산업이 정해져 있어요. '대세기술 필연산업'으로 인재들을 끌고 갈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글로벌 첨단 산업은 오너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수천개의 전문화된 기술팀들의 전쟁터에요. 몇십년에 걸친 장기 레이스를 뛸 기술자 확보가 우선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임 전 사장은 "수요기업 주도의 반도체 및 나노기술 특성화 대학 설립, 계약학과 설립 등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전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인재 공급 의지가 필요하다"며 "동시에 우리나라는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이 아직 20%밖에 안 되기에 미국이 이 부분을 무기화하지 않을까 그런 부분도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최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조성한다고 나선 것은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 봅니다. 미국의 대중 규제가 철저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기업들이 중국 생산 시설을 점차 축소하고 국내로 옮겨와야 한다고 봐요. 이번 산단 지정으로 국내 대형 사업장 조성이 가속화될 거라 기대합니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입문하고 1년 뒤인 1976년 삼성반도체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카이스트 석사과정을 거쳐 삼성전자의 '해외연수 제도' 1호로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 반도체의 이른바 시초라고 불리는 '부천 시절', 즉 삼성 반도체 굴기 과정을 시작 단계부터 경험한 업계의 산증인이다. 그의 오랜 상사였던 이윤우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를 향해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에 이르기까지 삼성의 거의 모든 반도체 사업개척에 참여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전사 기술총괄, 삼성종합기술원장, 신사업팀장 등도 지냈다. 삼성에서 물러 나온 뒤에는 SK그룹의 권유로 반도체 사업의 자문을 수년간 맡았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양향자 의원의 요청과 권유로 약 5년 간의 시간을 들여 지난해 연말 '히든 히어로스'를 출간했다. 한국 사회가 제공한 산업화의 사다리를 타고 고향인 거제에서 서울로, 지금의 자리까지 이를 수 있었던 당시 사회상을 기록하고, 미래 세대가 먹고 살 수 있는 산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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