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개전 초 CIA의 해외피신 거부
"젤렌스키 도피" 러 인지전에 키이우서 연설
세계 각국 의회 상대 '맞춤' 화상 연설
美·佛·獨 등 방문해 전투기 지원 등 촉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닌해 3월 1일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 1년을 맞았다. 전쟁이 단시일 내 종결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상과는 달리 1년이 넘도록 러시아군과 우크라군은 여전히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전 세계 공급망 병목현상과 에너지난 등을 불러 글로벌 경제위기를 가중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부터 전황(戰況)과 전망, 경제적 손실, 재건사업 등을 다루는 시리즈를 싣는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만해도 국제사회는 러시아군의 대대적 공세에 우크라이나군이 얼마 못가 항복하고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단 4일이면 키이우를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중앙정보국(CIA)도 우크라이나군이 최대로 저항할 수 있는 기간을 1개월 이내로 보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해외 피신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외 피신을 거부하고 대신 키이우를 떠나지 않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군 총동원령을 내리고 우크라이나 외무부를 통해 러시아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 등 서방 지도자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앞으로의 전쟁 구상을 논의했다.
당시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주했다는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며 인지전을 전개하자 그는 개전 다음날 키이우에서 참모진들과 찍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임팩트 있는' 연설을 통해 깊은 인상은 남겼다. 그는 "대통령이, 군이 여기에 있고 시민들도 여기에 있다"며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언제나 그럴 것"이라며 러시아를 규탄했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키이우 내 네트워크 시스템이 망가지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서비스 '스타링크'가 제공한 서비스를 활용해 러시아를 상대로 역인지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 같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동으로 개전 초반 우크라이나인들이 결집해 항전하는 분위기가 조기에 확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또 지난해 3월 1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특별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해 EU의 강한 지지를 받아냈다. 우크라이나가 EU 가입을 공식 요청한 다음 날로 그는 "우크라이나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우리는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강조했다. 같은 날 CNN과 로이터 등 외신을 벙커로 초청해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의 침략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후 미국 상하의원 합동 화상연설을 통해 비자마스터 카드 발급중단 등 대러제재와 전투기와 무인기(드론) 지원을 촉구하고 영국 하원과 캐나다, 아일랜드, 일본 등 국가의 의회를 상대로 화상연설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24번째로 국회연설을 했다.
특히 그는 미국 의회에서 911테러와 자유 투쟁을, 영국의회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연설을 인용했고, 한국에서는 6.25전쟁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이겨낸 경험을 언급하는 등 국가 별 맞춤 연설로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국제사회 무대에서도 크고 작은 연설을 이어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칸 국제영화제,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인 다보스포럼 화상,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이다. 가장 최근의 국제사회에서 연설은 지난달 18일 53회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화상연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극비리에 다른 나라를 방문해 연설하며 러시아제재와 전투기 지원 등을 요청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미 연방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미 의회로 이동해 상·하원을 대상으로 "우크라이나는 살아있고 여전히 활동적이다"며 연설했다. 미 의회는 연설 하루만에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을 위한 449억 달러(약 59조원) 예산안이 통과됐다.
지난 8일 영국과 프랑스를 깜짝 방문해 전투기 지원을 재차 촉구했다. 개전 후 미국에 이은 2번째 해외 순방이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국방색 군용 티셔츠를 입고 국제무대 곳곳에서 연설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서방에 지원을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EU는 10차 대러 제재안에 합의했으며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억 6000만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F-16 전투기 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미 정부 내 여론도 변화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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