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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쇼트 시네마⑮] 이상한 '병구'가 봄과 함께 왔다


입력 2022.11.30 10:15 수정 2022.11.30 10:1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형슬우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편집자주>


민지는 4월이 되자 가구를 옮겨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 무거운 가구가 있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주변의 아는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어쩐 일인지 모두가 민지의 부탁을 거절한다. 이에 민지는 내키지 않지만 친하지 않은 병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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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구는 민지의 집 안에 들어오더니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고 시작한다. 자신의 공간을 멋대로 침투하는 병구를 보고 있자니 언짢지만 부탁을 한 건 자신이라 꾹 참는다. 급기야 병구는 부엌에 가 짜파게티를 끓이며 가구 옮기는 일을 뒤로 미룬다.


방귀를 끼고 화장실까지 가는 병구를 보며 민지는 불쾌하다는 듯 창문을 열어버렸다. 사실 민지는 환절기 알레르기가 있어 재채기를 하면서도 병구의 흔적을 방 안에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다. 민지의 마음을 모르는 병구는 화장실에 다녀온 후 창문을 닫아버린다.


병구는 가구를 옮기며 고등학생 때 인기투표 하던 날 민지를 찍었다느니, 시키지도 않은 냉장고 정리를 하는 등 민지의 심기를 계속 불편하게 하지만, 정리 하나는 깔끔하게 마쳤다. 민지는 화사해진 방과 병구가 무릎을 꿇고 우직하게 바닥을 걸레질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아진다. 이제는 병구가 집을 떠날 시간. 병구는 민지가 이 맘때쯤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생각나 사왔다고 물티슈를 건넨다.


민지는 창문을 활짝 열고 병구의 모습을 지켜본다. 들어올 땐 지질하고 불쾌한 병구였지만, 돌아갈 땐 어쩐지 괜찮은 것도 같다. 병구를 보며 봄의 햇살을 만끽하던 민지는 다시 재채기를 하고 만다.


주연을 맡은 서현우와 공민정의 담백한 생활 연기가 흥미롭다. 병구가 본능적인 행동을 하지만 불쾌감보다는 흥미로운 이유는 서현우의 캐릭터 해석이 뛰어나다. 어떠한 의도도 없이 엉뚱하게 자신을 드러내 결국 민지에게 자신을 각인 시킨다. 민지에게 어필하겠다는 의도마저도 병구에게는 계획에 없던 일이다.


기본적으로 갈매기 눈썹에 퉁명스러워 보이는 공민정의 인상은, 민지의 심경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민지에게 새로운 설렘이 찾아온 걸까. 민지의 재채기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기분 좋은 해석을 안긴다. 겨울이 오고 봄이 오듯, 모두에게 거절당한 민지에게 병구가 찾아왔다. '병구'는 2016년 후쿠오카 인디펜던트 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형슬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러닝타임 21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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