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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생존본능 파고든 첩보액션…OTT 마스터피스의 탄생 [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㊹]


입력 2022.09.04 07:18 수정 2022.09.04 07:1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감독 윤종빈의 진화, ‘범죄 세피아’ 수작

배우 하정우, ‘원의 중심’ 역할로 세련미↑

역시 황정민, 명불허전 마약왕 연기 눈길

박해수·장첸·조우진·추자현·유연석 호조의 캐스팅

'수리남', 범죄 누아르에 추억의 감성을 더한 '범죄 세피아' ⓒ출처=네이버 블로그 dongi0508 '수리남', 범죄 누아르에 추억의 감성을 더한 '범죄 세피아' ⓒ출처=네이버 블로그 dongi0508

드디어 봤다. 9월 9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될 감독 윤종빈 연출의 드라마 ‘수리남’. 오는 7일 제작보고회를 앞두고 취재용으로 일시 공개됐다.


입소문이 무성했다. 작은 역으로 출연한 배우는 기본, 경쟁사에서도 호평이 나오는 상황. 도대체 어떻길래 ‘넷플릭스 역대 최고작’이라는 수식어가 나오는지 궁금증이 증폭됐다.


사실 기대는 금물이다. 기대는 실망을 부르기 십상, 마음을 내려놓고 봐야 만족도가 높아진다. ‘수리남’은 달랐다. 정말 그런가 보자, 벼르는 마음을 다독였다. OTT(Over The Top·인터넷TV) 드라마나 영화의 홍수 속에 설익은 콘텐츠들, 성긴 만듦새의 영상물이 범람하는 요즘. 안방극장엔 부적절하고 2시간 영화 한 편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이야기를 6부작에 담아냈다. 일시적 인기에 편승한, 급조된 콘텐츠가 아니라 차별화된 플랫폼의 존재 근거를 잊지 않은 ‘정통 OTT 드라마’의 정의를 보여준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촬영현장의 감독 윤종빈(사진 왼쪽)과 배우 하정우 ⓒ쇼박스 제공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촬영현장의 감독 윤종빈(사진 왼쪽)과 배우 하정우 ⓒ쇼박스 제공

‘수리남’은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로 불리는 영화감독 윤종빈의 드라마 진출작, 배우 하정우가 ‘히트’ 이후 15년 만에 선택한 드라마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동문수학한 두 사람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로 함께했고 이번이 다섯 번째 호흡이다.


8년 만의 작업이지만, 두 사람은 역시나 서로를 잘 알고 있음이 ‘수리남’에서 확인된다. 감독 윤종빈은 배우 하정우를 바닥까지 몰고 가 최고점의 높이를 한껏 끌어올린다. 지하까지 떨어진 하정우는 그 깊이만큼 큰 반동의 에너지로 솟아오른다. 배우 하정우는 ‘촌스럽게’ 뜨겁게 분출하지 않는다. 감독 윤종빈의 작품세계에 걸맞게, 세련된 용솟음으로 날아오른다. 감독 윤종빈의 디렉팅에 의해 배우 하정우는 자유로운 날갯짓을 하고, 배우 하정우의 유연한 표현을 통해 감독 윤종빈의 연출론이 ‘수리남’에 드리운다.


드라마 포스터 ⓒ이하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포스터 ⓒ이하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수리남’은 남아메리카 북쪽의 작은 나라 수리남을 배경으로 마약왕에 등극한 사이비종교 목사 전요환(황정민 분), 그를 잡으려 3년간 비밀작전을 펼친 국정원 팀장 최창호(박해수 분), 전요환에 의해 마약범 누명을 쓰게 된 강인구(하정우 분)의 얽히고설킨 추격전을 그린다. 대만배우 장첸이 수리남 차이나타운의 보스 첸진으로 분해 전요환과 대립각을 세우고, 배우 조우진이 첸진과 전요환의 조직을 넘나드는 미스터리 인물 변기태를 연기한다. 유연석은 영화 ‘늑대소년’ 이후 오랜만에 선한 매력을 내려놓고 전요환의 국제변호사 데이빗 박을 맡았다.


황정민은 예배 설교로 시작되는 등장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제사기 잡범의 비열함으로 시작해 낯선 땅에서 종교의 힘으로 인간과 어둠의 세계를 장악한 한국인 마약왕의 카리스마를 능수능란하게 뿜을 또 다른 배우는 생각나지 않는다.


사이비종교 목사 전요환(가운데), 정체를 알기 힘든 전도사 변기태(사진 왼쪽), 충직한 집사 이상준 ⓒ 사이비종교 목사 전요환(가운데), 정체를 알기 힘든 전도사 변기태(사진 왼쪽), 충직한 집사 이상준 ⓒ

박해수는 최 팀장일 때, 강인구와 호형호제하는 (구)상만이 형일 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대세 연기파’임을 과시한다. 에드워드 양, 왕가위, 이안 등 세계적 감독들과 작업해온 장첸은 드라마 ‘신서연’(2019)에 이어 한국 드라마에 다시 출연한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반전에 반전이 계속되는 마약전쟁에서 ‘캐스팅보트’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통역사를 연기했던 조우진은 귀에 쏙쏙 박히는 딕션(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으로 3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쓴다. 장면에 따라 재미도 놀라움도 주는데 뒤로 갈수록 활약이 크다. 유연석은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에 이어 다시금 영어를 구사하는데 영화에서 가장 댄디한 차림으로 비주얼을 담당한다.


영화 ‘비상선언’에서 형사를 연기한 송강호의 후배로 분해 눈길을 끌었던 배우 현봉식은 ‘수리남’에서는 하정우와 동고동락하는 죽마고우로 ‘찰떡 호흡’을 보여준다. 누구와 짝을 이루든 어느 자리에 놓이든 현실감 뚝뚝 흐르는 연기로 박수를 부른다. 추자현은 적은 등장에도, 화면에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강인구 아내로서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연기로, 강인구의 가족애와 부성애를 강화한다.


모든 인물과 접점을 갖는, 중심축 하정우. '수리남'은 우리들의 아버지(부모님), 그 먹고사는 일의 '민낯'을 조명한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an1329 모든 인물과 접점을 갖는, 중심축 하정우. '수리남'은 우리들의 아버지(부모님), 그 먹고사는 일의 '민낯'을 조명한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an1329

이 모든 배우와 호흡한 게 하정우다. 배우 하정우는 극의 중심에서 이야기 수레를 끈다. 기존 출연작들에선 종종 수레에 이 배우 저 배우를 잘 태우는 것, 작품 전체의 균형과 가치에 중점을 두느라 자신을 빛내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 ‘설렁설렁 연기’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번엔 다르다. 시청자를 대신해 수리남에 뛰어들어 달리고, 연출을 대신해 극으로 들어가 파트너를 바꿔가며 배우들과 손잡고 ‘2인 3각’ ‘3인 4각’ 이어달리기를 한다. 국제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마약왕 체포 제1열에서 고군분투한다. ‘수리남’도 하정우도 돋보인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하정우를 위시한 배우들의 연기방식이다. 누구도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치며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는다. 사이비 교주에 마약왕을 겸한 전요환 역을 연기하자면 그럴 만도 하고, 그런 전요환을 잡고자 목숨 걸고 덤빈 인물들이라면 그럴 법도 하고, 자신의 정체를 숨겼지만 평범하게 묻히지 않으려면 그럴 수도 있건만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세계 언론으로부터 영화 ‘공작’에 대해 ‘총성 없는 액션’이라는 세련된 연출법을 호평받은 윤종빈 감독의 결이기도 하거니와. 평소 알 파치노식 열혈 연기보다는 로버트 드 니로식 위트 넘치는 연기를 선호하는 하정우와 손을 맞잡은 배우들이 협업과 소통의 과정에서 ‘서로 닮아간’ 세련됨이다.


생존본능, 가족에 대한 사랑은 평범한 사람을 '미션 임파서블'로 만든다 ⓒ이하 넷플릭스 제공 생존본능, 가족에 대한 사랑은 평범한 사람을 '미션 임파서블'로 만든다 ⓒ이하 넷플릭스 제공

감독 윤종빈과 배우들의 세련된 표현 덕에 ‘수리남’은 물량 쏟아붓는 단순 범죄 액션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작동원리까지도 조망하는 마스터피스의 면모를 갖춘다. 젖 먹던 힘, 인간의 저력을 끌어올려 초인적 에너지를 가능케 하는 ‘생존본능’이 속고 속이는 심리전과 엎어 치고 뒤집어 치는 난투극으로 형상화된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가족에게 돌아갈 것인가가 민간인 강인구를 ‘미션 임파서블’의 첩보원으로 만든다.


드라마 ‘수리남’의 이러한 세계관은 10년 전 세상에 나온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글로벌 확장으로 읽힌다.


지하조직의 보스는 배우 하정우에서 황정민으로 변했고, 내 식구 입에 들어갈 밥을 목숨 걸고 만드는 우리들의 아버지는 배우 최민식에서 하정우로 달라졌다. 밥벌이의 엄중함, 그 민낯을 처절히 드러내 보이는 것은 같다. 단순히 ‘범죄와의 전쟁’의 배경이 아시아 한국에서 남미 수리남으로 바뀌었다는 게 아니다. 그 무엇보다 중한 ‘먹고사는 일’의 가치와 여러 생존본능이 부딪히고 교차하며 일어나는 세상사의 희비극을 감독 윤종빈은 세계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틀로 풀어냈다. 수리남이어야 했고, 마약왕 잡는 민간인이어야 했던 이유다.


액션, 웃음, 드라마…3박자를 고루 갖춘 OTT 수작 '수리남' ⓒ 액션, 웃음, 드라마…3박자를 고루 갖춘 OTT 수작 '수리남' ⓒ

드라마 ‘수리남’은 세피아 톤의 사진으로 기억될 듯하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흑색으로 그려내는 범죄 누아르에는 차마 천연색일 수 없는 핏빛 아픔이 있다. ‘범죄 세피아’에는 누아르로는 담기 어려운 추억의 감성, 언젠가는 자식 앞에서 자랑하고픈 영웅담이 어린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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