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웨이퍼스·실트로닉 이어 엔비디아·ARM도 좌절
주요국 반대로 연이어 제동…점점 높아지는 M&A 장벽
경쟁국 역량 강화 경계심 커져...삼성에 양날의 검되나
글로벌 반도체 업계 빅딜(Big Deal·대형거래)이 연이어 무산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전 세계 각국이 외국 기업 경쟁력 강화에 경계심이 커지면서 M&A 장벽이 높아지고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경쟁을 위한 견제도 한층 격화될 조짐이다.
이러한 견제 심화는 대형 M&A를 추진하고 있는 삼성전자에게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 규모였던 미국 엔비디아와 영국 ARM간 M&A가 결국 좌절되는 등 글로벌 기업들간 결합이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
ARM의 대주주로 손정의 회장이 이끌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앞서 지난 2020년 9월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매각 금액은 현금과 주식교환을 합쳐 385억달러(약 46조1400억원) 규모였다.
지난해 엔비디아 주가가 급등하면서 거래규모는 지난해 11월 최대 870억달러(약 104조원)로 급증했고 이후 주가조정으로 660억달러(약 79조1000억원) 규모가 된 상태였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간 M&A 잇따라 무산…독과점 우려
이번 M&A는 반도체 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이라는 점에서 성사 여부와 관련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돼 왔다. 소프트뱅크는 양사간 M&A를 발표한 이후 전 세계 주요 각국 경쟁당국에서 승인절차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규제당국들에서 모바일·그래픽칩 분야 절대 강자인 두 회사가 합쳐지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가 발생하며 경쟁 제한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 왔다.
엔비디아는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절대 강자로 ARM도 전 세계 모바일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 9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독점적 기업이다.
이에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지난해 7월 양사간 M&A 관련 1단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심각한 독과점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혁신과 경쟁을 저해하고 반도체 산업에서 지나치게 높은 통제권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만장일치로 인수 반대 소송 제기를 결정했다.
또 ARM 본사가 있는 영국뿐만 아니라 EU와 중국에서도 경쟁당국의 승인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삼성전자·퀄컴·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기업들도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서 모바일 반도체 핵심기술까지 확보해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가 왜곡될 수 있다며 M&A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인수 무산 우려는 커져왔다.
이에 최근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포기하려는 정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8일 결국 현실화됐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간 M&A가 무산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반도체 웨이퍼 생산업체 타이완 글로벌웨이퍼스와 독일 실트로닉간 M&A가 독일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타이완을 비롯, 유럽·미국·중국 등 주요 경쟁당국은 승인했지만 독일 정부는 인수계약 마감 시한인 지난 1월31일까지 승인 허가를 내주지 않아 계약을 최종 결렬됐다.
당초 글로벌웨이퍼스는 43억5000유로(약 5조9500억원)에 실트로닉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양사간 합병이 성사되면 일본 신에츠에 이어 세계 2위 웨이퍼 제조 기업이 탄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외에도 지난해 3월에는 중국 경쟁당국의 거부로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 M&A가 좌절됐고 시스템반도체업체 매그나칩반도체도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드캐피탈과 인수 계약을 체결했지만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우려한 미국 정부의 반대로 백지화된 바 있다.
반도체 공급난 지속으로 보호주의 강화…깐깐해지는 M&A 심사
반도체 기업들간 잇따른 빅딜 무산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난이 지속되면서 각국이 보호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 세계 각 국이 그 중요성이 커진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의지가 강해지면서 관련 기업들간 결합 심사를 이전보다 까다로운 기준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기술 주권을 보호해 자국 반도체 산업의 독립성을 강화해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경쟁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크게 우려하면서 외국 기업의 자국 기업 M&A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 기업간 M&A에도 제동을 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반도체 M&A 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주요국 경쟁당국들이 대형이 아닌 딜에서도 보다 엄격한 규정과 기준을 적용하면서 다른 국가 기업들간 M&A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M&A 환경은 국내 기업들에게 양날의 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사들의 M&A가 쉽지 않아지면서 방어는 용이해질 수 있지만 M&A 추진이 어려워지면서 추격은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압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 수성은 보다 용이해질 수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M&A를 통한 경쟁력 강화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미국 전장부품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대규모 M&A는 사라진 상태다. 이미 대형 M&A를 예고하면서 반도체 분야에서는 독일 인피니온과 네덜란드 NXP 등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이 유력 후보기업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추진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120조원 안팎으로 충분한 실탄을 보유하고도 얼어붙은 반도체 M&A 시장으로 인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171조원을 투자한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한 터라 고심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 1위 기업인 삼성전자에게는 그만큼 견제 심리가 더욱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삼성전자 영향력 증대를 지나치게 경계한 나머지 M&A 시도에 대해 아예 제동을 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 심화로 보호주의 심리가 강하게 작동하면서 주요국들이 대형 딜은 물론 스몰 딜까지도 까다롭게 심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삼성전자로서는 M&A 추진에 있어서 제약 사항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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