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파워집단인 유대인들의 막강한 영향력과 로비력 때문”
“미국의 중동 정치·군사 전략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
“이스라엘 보호를 사명으로 여기는 기독교 시온주의 전통 때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중동을 순방하면서 이스라엘은 아예 방문하지 않았고, 이란과 핵협상이나 후티반군과 휴전할 때도 이스라엘을 배제했다. 이스라엘이 경계하는 시리아의 아흐메드 알샤라 새 정권을 인정했고, 하마스와는 단독 협상을 벌여 미국계 인질을 구출해냈다. 그러자 미국의 진보성향 언론이나 일부 국내 언론은 “트럼프의 이스라엘 사랑은 끝났다” 또는 “미국도 돌아설 수 있으니 이스라엘 국민들은 정신 차려라” 등의 보도를 쏟아 냈다.
하지만 칼로 물베기인 부부싸움과 비슷했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6월13일 이란과 12일 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결국 이란 핵시설 3곳에 벙커버스터 등을 폭격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스라엘의 고집에 두 손을 든 것이다. 최근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트럼프를 위해 노벨상 추천서를 써주는 등 다시 브로맨스(브라더+로맨스)를 과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Don’t worry America, Israel is behind you(미국이여 걱정 마라 이스라엘이 뒤에 있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쉽게 본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켜 주는 게 아니라 실상은 반대라는 얘기다. 뼈있는 농담이다. 세계를 관세 하나로 호령하는 트럼프도 이스라엘 앞에만 서면 얌전해지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도 이스라엘을 만나면 ‘이스라엘 더 우선주의’로 바뀐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3가지 설명이 있다.
① “미국 내 파워집단인 유대인들의 막강한 영향력과 로비력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미국 내 파워가 막강하고 로비력도 뛰어나기에 미국이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한다고 보는 전통적 시각이다. 2007년 발간된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 외교정책’은 편향된 시각 때문에 미국에서 논란을 일으켰지만, 유대인의 로비를 본격 다루어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 로비단체인 AIPAC(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는 갑부들 외에 30만명의 개인 기부자들이 천문학적 기금을 조성, 의원들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친(親)이스라엘’로 유도한다. 상원과 하원은 대통령보다 AIPAC 눈치를 더 본다거나, 미국 선거자금의 60%가 유대인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이 1945년부터 2007년까지 이스라엘에 지원한 금액은 1400억 달러로, 전체 대외원조의 20%를 차지한다. 게다가 미국의 정계·학계·금융계·언론계에 유대인들이 고루 포진하고 있어 당연히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600여만 명에 이르는 미국 유대인들은 선거 때마다 70%가 이스라엘에 다소 냉담한 민주당을 지지한다. 공화당인 트럼프는 미국 유대인 표의 22~24% 밖에 얻지 못했다. 미국 내 반(反)이스라엘 움직임도 엉뚱하게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1996년 설립된 진보 성향의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VP)'는 연일 가자지구 공격을 비판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유대인에게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하나'라고 물었더니 '필수적'이란 응답은 45%에 불과했다. 결국 미국이 유대인 파워나 로비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만 성립한다.
② "미국의 중동 정치·군사 전략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다, 이슬람 테러세력과 전쟁에 필요한 전략적 교두보여서 무조건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오스만 제국과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던 중동을 놓고 2차 대전 이후 본격적인 진출 전략을 마련했다. 팔레비 왕조가 이끌던 시절의 이란, 아랍국가들의 큰 형님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양 축으로 중동정책을 펴 나갔다. 미국은 1948년 독립한 이스라엘을 일찍 국가로 인정해주었으나, 그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대체로 균형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아랍 사회주의 노선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남진(南進)이 강화되고 반미(反美) 움직임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완전히 제압하면서, 소련 공산주의와 아랍 사회주의를 막을 전진기지로 이스라엘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이후 맹목적인 지원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현재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이집트·요르단·튀르키예 등과 우호 관계를 지속하고 있지만 이들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으며, 1979년 이후 반미의 선봉에 섰던 이란과 그 똘마니들을 제압하는데 기여한 이스라엘에게 전략적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정치적으로 일리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유엔의 이스라엘 관련 결의안에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하는가 하면 네타냐후를 사법 처리하려는 국제사법재판소(ICC)를 오히려 공격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③ "이스라엘 보호를 사명으로 여기는 기독교 시온주의 전통 때문이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각별한 배경에는 핵심 지도층의 전통적인 내면세계와 정서적 분위기를 봐야 한다.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전 세계로 쫓겨난 유대 민족이 중동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운 뒤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는 '기독교 시온주의' 신봉자들이 영미(英美) 쪽에는 많다. 미국의 경우 남(南)침례교회가 주류를 이루는 동남부의 ‘바이블 벨트’에 많다.
2021년 옥스퍼드대 박사인 도널드 루이스가 지은 ‘기독교 시온주의의 단기 역사’에 따르면, 기독교 시온주의는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유대인들을 성경 예언대로 고향으로 귀환시킨 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회복주의 이념을 공유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20세기 들어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세워질 조짐을 보이자 회복주의는 당시 등장한 세대주의(世代主義) 신학의 교리를 일부 받아들여 기독교 시온주의로 변모했다. 네타냐후도 "1948년 이스라엘 건국에서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고 인정했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하여 주로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이나 상류층 인사들의 정서에 깊이 자리잡았다. 특히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슬람이 지배하던 성지(聖地) 예루살렘이 탈환되자 누가복음 21장24절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믿는 동시에 더욱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높아졌다. 이란에 대해서도 에스겔 38장을 근거로 강력한 대응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의 강성 기독교 시온주의자 중에는 "미국의 존재 목적은 2000년만에 건국한 이스라엘을 지켜 주기 위한 사명에 있다"는 말도 한다. 트럼프도 기독교 시온주의를 접했으며, 자신이 수천 년 전 유대 민족을 해방시켜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트럼프의 측근에는 마이크 허커비 이스라엘 대사나 크리스티 노엠 국토안보부 장관 등 강성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 많다. 트럼프는 지난해 7월13일 유세 도중 총격 사건으로 신앙심과 사명감이 엄청 깊어졌다는데, 올 2월에는 백악관에 신앙실을 설치하고 자신의 영적 멘토이자 기독교 시온주의자인 폴라 화이트 목사를 수석고문으로 임명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트럼프의 마인드를 관찰할 때, 단순히 국제정치학적으로만 분석하면 수박 겉핥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이유는 이렇게 ①②③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이 이스라엘과 결별하거나 관계가 악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는 또 한국이 미국의 지도층을 제대로 파고 들려면 기독교 시온주의 정서를 이해하고 유대인 네트워크를 잘 뚫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글/ 최홍섭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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