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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신용대출 폭증에 아쉬움 곱씹는 보험사 왜


입력 2020.09.04 06:00 수정 2020.09.03 10:42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약관대출 올해만 1.5조 넘게 줄어…코로나에도 힘 빠진 불황형 대출

IFRS17 앞두고 내심 확대 기대했지만…銀 저금리 공습에 '속수무책'

국내 3대 생명보험사 약관대출 잔액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3대 생명보험사 약관대출 잔액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3대 생명보험사의 약관대출이 올해 들어서만 1조5000억원 넘게 줄어들며 그 규모가 30조원 대 아래까지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약관대출은 고객이 자신이 낸 보험료를 담보로 큰 부담 없이 돈을 빌릴 수 있는 특성 상 불황일 때 몸집이 불어나는 생계형 대출로 꼽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축소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준금리 0% 시대가 현실이 된 이후 은행 신용대출 이자율이 1%대까지 낮아진 기현상에 약관대출이 역풍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을 앞두고 내심 관련 대출 확대를 기대하던 보험사들은 아쉬움만 곱씹게 된 모양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3개 생보사들이 보유한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총 28조5347억원으로 지난해 말(30조659억원)보다 5.1%(1조5312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험 약관대출로 더 잘 알려진 보험계약대출은 고객이 납입한 보험료 내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이다. 이를 통해 보험 계약자는 가입한 보험 해약환급금의 70~80%의 범위 내에서 수시로 대출받을 수 있다. 본인일 경우 주민등록증과 보험증권 또는 가장 최근에 낸 보험료 영수증만 있으면 보험사 환급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보험사별로 봐도 이 같은 약관대출은 최근 일제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우선 삼성생명의 약관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15조8792억원에서 14조8274억원으로 6.6%(1조518억원) 줄었다. 한화생명 역시 7조7676억원에서 7조6036억원으로, 교보생명도 6조4191억원에서 6조1037억원으로 각각 2.1%(1640억원)와 4.9%(3154억원)씩 약관대출이 감소했다.


이는 금융권의 통념을 다소 빗겨간 추세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약관대출은 서민들의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늘어나는 특성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올해는 도리어 증가 곡선을 그리며 공식이 깨지는 모습이다.


보험사 약관대출이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사실상 자신이 미래에 받을 보험금을 당겨쓰는 형태여서 부담이 적고, 다른 대출들에 비해 절차도 매우 간편해 접근이 용이해서다. 잠시 융통할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비교적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대출인 셈이다.


더욱이 올해 대형 생보사들을 중심으로 금리가 상당 폭 떨어졌음에도 약관대출 감소 추이가 뚜렷해졌다는 측면도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다. 저렴해진 이자에도 소비자들이 약관대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상반기 삼성생명이 금리확정형 약관대출 금리를 0.5%포인트 가까이 낮춘데 이어, 다른 생보사들도 하향 조정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보험업계의 약관대출에 제동이 걸린 데에는 급증하고 있는 은행 신용대출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은행 신용대출이 보험 약관대출의 고객까지 넘볼 정도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들어 8월까지 국내 5대 은행들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총 124조2747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13.1%(14조3639억원)나 늘면서, 이미 지난해 연간 확대 폭을 넘어섰다. 지난해 해당 은행들의 개인 신용대출은 101조9332억원에서 109조9108억원으로 7.8%(7조9776억원) 증가했다.


이렇게 신용대출로 사람들이 몰리는 배경에는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진 이자율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하고, 이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다. 이에 따라 지난 달 신규 취급액 기준 국내 은행들의 개인 신용대출 금리는 평균 3.39%로 전년 말(4.43%) 대비 1.04%포인트 급락했다.


하지만 은행 신용대출 이자율 하락세는 좀처럼 멈출 줄 모르고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주택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 금리가 더 낮아지는 역전까지 벌어질 정도다. 은행 신용대출로의 쏠림 현상이 당분간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달 초 5대 은행들의 신용대출 금리는 최저 1%대 중반에서 최고 3%대 중반까지 떨어진 상태다. 같은 시점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은 2%대 초반에서 4%대 초반으로, 신용대출 금리보다 하단과 상단이 모두 높았다. 이는 신용대출 이자율의 기준이 되는 단기 채권 금리가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의 토대인 장기 채권 금리보다 더 많이 떨어진 탓이다.


문제는 이처럼 약관대출의 수요가 신용대출로 옮겨갈수록 보험사들의 잠재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23년 시행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때문이다. 2023년부터 보험업계에는 부채를 현행 원가 대신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이 적용된다. 보험사는 그 만큼 부채를 더 쌓아야 해 재무적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IFRS17이 시행돼도 약관대출은 여전히 보험사에 유리한 영역으로 남을 전망이다. 보험계약대출의 담보가 되는 해지환급금은 추후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채다. 그런데 약관대출을 통해 이를 다시 계약자에게 대출하면 해당 기간만큼 부채를 이연하는 효과가 생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가 확연히 낮아진데다 비대면 방식을 통해 절차도 간소화되면서, 은행 신용대출이 주택담보대출 이외의 가계 대출을 상당수 대체하는 흐름"이라며 "회계적 측면에서 약관대출 증대를 기대하던 보험사들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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