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구품중정제´

입력 2004.10.29 14:49  수정 2004.10.30 09:04

"수능 9등급제는 현대판 ´구품중정제´"

‘삼국지’의 조조가 원소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을 때의 일이다.
원소가 조조에게 물었다. “만일 우리 거병이 실패했을 경우 근거지로 삼을 만한 곳이 있겠는가.”

조조가 되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원소가 대답했다. “남쪽으로 황하를 방패로 삼고, 북쪽으로는 연(燕)과 대(代)를 울타리로 북방 융적의 무리를 아우르겠다. 그리고 남쪽을 향해 천하의 패권을 다툰다면 성공하지 않겠는가.”

대답을 들은 조조가 말했다. “나는 지혜롭고 용감한 사람들을 의지해 그들을 도리로써 이끈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장소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조조는 이처럼 인재를 중요시했다. 조조는 인재 확보 방안의 하나로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라는 제도를 실시했다. 천하의 모든 인재에 대한 신상정보를 표로 만들어 9단계로 구분, 이를 근거로 임용한 것이다. 덕망있고 재주가 뛰어난 인물을 상상(上上)부터 하하(下下)까지의 9품(品)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 제도에 따라 중앙의 관리들이 중정관이 되었다. 중정관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각 지역의 모든 인재들을 등록표에 올려 등급을 매긴 뒤 이것을 기준으로 인재를 뽑았다고 한다. 그래서 구품중정제라고 했다. 구품중정제는 이미 관리가 된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모든 인재를 등록표에 올렸다. 등록표에 오른 인재 가운데 중정관들의 평가를 심사를 기준으로 관직에 임명했던 것이다.

이번에 확정된 대입 개선안은 수능을 ‘9등급’으로 한다고 했다. 전국 석차 상위 24,000등까지 1등급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2등급에서 9등급까지 학생들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상상(上上)부터 하하(下下)까지 9품으로 분류하는 ‘구품중정제’와 무척 ‘닮은꼴’이다. 물론 정부가 구품중정제를 모델로 개선안을 마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구품중정제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었다. 인재들의 진급이나 보직 변경, 면직 등이 모두 중정관의 심사 여부에 달려 있었다는 점이다. 중정관에게 잘 보이면 출세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탈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리들은 중정관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만 하게 되었다. 결국 제도적인 모순으로 지적되었다.

구품중정제의 모순을 개선하고 보완한 것이 나중에 수 나라에서 시행되는 ‘과거제도’였다. 시험을 치러서 우수한 인재를 뽑는 방법이었다.

수능 9등급제도 역시 벌써부터 비슷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같은 과목이라도 가르치는 교사의 평가에 따라 등급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교사의 능력이 모두 같을 수도 없다는 지적이다. 학생들이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교사에게 잘 보이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중정관에게 잘 보여서 출세를 하려고 했던 구품중정제의 모순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조조의 구품중정제는 인재를 발굴하고,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수능 9등급제도는 이런 면에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구품중정제를 보완해서 과거제도를 도입하게 된 ‘과거사’도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대판’ 구품중정제가 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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