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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소소한 영화관] 비루한 삶이라도 괜찮아…'국도극장'


입력 2020.06.05 14:04 수정 2020.06.09 21:25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배우 이동휘, 현실감 넘치는 연기 호평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전지희 감독 연출

<수백억대 투자금이 투입된 영화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선한 스토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있습니다. 많은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꼭 챙겨봐야 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영화 '국도극장'ⓒ명필름 영화 '국도극장'ⓒ명필름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뭘해도 안 풀리고, 나만 안 되는 것 같은 느낌. 주위 친구들은 잘나가지만 나는 그대로인 듯한 기분. 영화 '국도극장'은 비루한 내 인생도 괜찮은 삶이라고 다독인다.


사법 시험에 매달리던 기태(이동휘 분)는 사법 고시가 폐지되자 고향 벌교로 돌아온다. 빈손으로 돌아온 고향엔 그를 반겨주는 사람도, 그가 반가워할 만한 사람도 없다. 기태는 모든 게 심드렁하다. 서울에서 뭐라도 됐을 줄 알았다고 비꼬는 고향 친구나 박사학위를 받은 잘난 형, 그런 형만 챙기는 어머니(신신애 분)까지 그를 둘러싼 사람들 모두 귀찮다.


할 일없는 기태는 어쩔 수 없이 낡은 재개봉 영화관 '국도극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극장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기태는 간판장이자 극장 관리인 오씨(이한위 분)와 동창 영은(이상희 분)을 만난다. 밤낮 취해있는 오씨는 슬며시 기태를 챙겨주고, 영은 역시 기태를 무심한 듯 살뜰히 바라본다.


'국도극장' 속 인물들은 평범하면서 사연 있는 인물이다. 시험에 실패한 기태,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기태, 시간을 쪼개가며 여러 일을 전전하는 가수 지망생 영은,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기태의 형까지.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국도극장'은 인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과하게 낙관적이지도, 터무니없이 비관적이지도 않다. 대신, 영화 속 그림처럼 우리네 삶이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격려한다. 누군가도 그렇게 힘들다고, 그러니 당신의 지친 시간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말이다.


영화 '국도극장'ⓒ명필름 영화 '국도극장'ⓒ명필름

인상적인 대사도 있다. 오씨가 기태를 향해 "서울이 문젠거여 니가 문젠거여"라는 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태의 마음을 대변한다. 기태뿐만 아니라 매일 좌절하고 또 일어서는 현대인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 '뜨끔'한다. 영화는 마음을 다 잡아도 또다시 스르르 무너지는 일상의 반복을 콕 집어 꺼내놓는다.


'국도극장' 간판 위로 걸린 영화 간판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영화들은 기태의 답답한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그를 응원하고 위로한다. 기태가 처음 '국도극장'을 찾았을 때 걸린 영화 간판은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서울에서 벌교로 돌아온 기태의 상황을 대변한다.


간판은 '첨밀밀', '박하사탕', '봄날은 간다'를 거쳐 후반부 '영웅본색'에 다다른다. 기태가 오씨 영은과 만나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 서울에 가고 싶어 하다가 주저하는 마음은 결국 '영웅본색'에 이르러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기태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잔잔하면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사실적이고 담백하다. 주인공 이동휘는 배우가 아닌 진짜 기태처럼 보일 정도로 준수한 연기를 펼쳤다. 세상을 향한 심드렁한 태도는 이동휘를 통해 지극히 현실적으로 비친다. 이한위, 신신애, 이상희 모두 내 옆에 있는 이웃처럼 느껴질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펼쳤다. 친근하고 정겹다.


명필름의 영화제작 시스템 명필름랩이 선보이는 다섯 번째 작품이다. 3기 연출 전공인 전지희 감독이 연출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제작·투자 프로그램인 전주시네마 프로젝트에 선정돼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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