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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부담되니 손절' 정영진 내친 MBC의 비겁함


입력 2020.05.15 00:01 수정 2020.05.14 22:57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비판 여론 예상 가능했음에도 DJ 자리 먼저 제안

"힘없는 개인만 다쳐" MBC 향한 불만 쏟아져

EBS1 '까칠남녀' 캡처. EBS1 '까칠남녀' 캡처.

주식 시장에서 통용되는 말 중 '손절은 빠를수록 좋다'는 '진리'에 가깝다. 당장 손실이 있더라도,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어쨌든 '손실'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본인이 책임지지 않는 손절도 있다. 대표적인 게 방송사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과 책임을 지는 당사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이상한 구조다. 최근 MBC FM '싱글벙글쇼'의 새 DJ로 낙점됐다가 하차한 방송인 정영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7일 MBC는 33년간 '싱글벙글쇼'에서 호흡을 맞춰온 강석과 김혜영의 하차를 발표하면서 새 DJ로 정영진과 배기성을 낙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정영진의 발탁 소식만으로도 논란은 누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이미 팟캐스트 출신 방송인들은 지상파 방송 출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휩싸였다. 정영진은 팟캐스트계의 백종원이라 할 만큼, 이미 그의 성향과 유명세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다.


과거 논란이 됐던 발언이 공격의 빌미가 될 거란 예상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를 굳이 발탁한 건 MBC였다. 그만큼 MBC는 정영진 발탁에 따라 뒤따르는 부담을 마땅히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정작 논란이 커지자 MBC는 예상보다 빠른,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정영진의 하차'를 결정했다.


MBC 라디오본부는 8일 "'싱글벙글쇼' 진행자로 내정한 방송인 정영진을 둘러싼 최근 여러 논란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정영진 씨를 진행자에서 제외하기로 이날 오전 결정했다"고 밝혔다.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발탁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혼선을 빚은 것에 대한 사과도, 하차 결정으로 상처를 받았을 정영진에 대한 예의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영진은 이날 오후 생방송으로 진행된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하차 소식을 전했지만, 절친한 동료이자 공동 진행자인 최욱은 "정영진은 갈기갈기 찢기지만 방송사들은 또 괜찮다. 나약한 개인만 다친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정영진의 발언에 대해서도 앞뒤 맥락을 자른 채 왜곡해 공격하고 있다며 반박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정영진의 발언 중 문제가 된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정영진은 2017년 5월 15일 방송된 '까칠남녀-여자도 군대 가라' 편에서는 "여성이 먼저 군대에 먼저 간 후에 성평등을 요구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또 그 해 8월 14일 방송된 EBS1 '까칠남녀-남자들이여, 일어나라' 편에서 데이트비용 분담 문제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태도를 '매춘' 비유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행정지도 처분인 '의견제시'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까칠남녀'는 젠더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출연자들이 나와 토론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들에겐 서로 다른 입장이 주어졌고, 실제 본인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그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굳이 문제 삼자면 정영진뿐만 아니라 출연자 모두가 편협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해당 발언으로 비난을 받는 건 정영진이 유일하다. 물론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정영진이 지상파 방송에 출연할 자격을 박탈할 만한 일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이런 다양한 의견에 대해 MBC가 충분한 고민과 토론을 한 뒤에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MBC는 정영진에게 '불명예 하차'라는 멍에를 뒤집어씌운 채 뒤로 숨어버렸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누군가를 섭외할 때도, 하차시킬 때도 방송사는 끝까지 책임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약한 개인이 난도질당할 때 침묵하고 뒤로 물러선다면 누가 방송사를 믿고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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