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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드라마가 사랑한 직업①] TV 속 주류는 재벌과 법조인


입력 2020.04.19 14:37 수정 2020.04.20 09:30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33%가 재벌·기업가·법조인, 현실과 괴리

대리만족 좋지만, 왜곡된 인식 심어줄 우려


SBS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변호사인 정금자를 연기한 김혜수. ⓒ SBS SBS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변호사인 정금자를 연기한 김혜수. ⓒ SBS

드라마는 시대상을 반영하며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특히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 반전과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무엇보다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대리만족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놓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성공 신화를 쓰며 시청자들의 어릴 적 꿈을 대신 이뤄준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에 자기 자신을 대입하며 이야기 속에 깊이 빠져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들이 지나치게 일부 직업군만 조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칫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4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영된 10개 방송사 110편의 드라마 속 주·조연급 등장인물 가운데, 재벌과 기업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8%나 됐다. 또 법조인과 경찰이 15%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도 의료인(7.1%), 연예인(3.3%), 특수직 공무원(2.0%), 정치인(1.3%) 등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직업군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SBS 드라마 '하이에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JTBC '부부의 세계' 등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작들도 법조인과 의사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회사원의 비율은 오히려 10%로 이들보다 낮았다. 특히 학생과 구직자가 각각 3.8%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드라마 속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더 큰 문제는 청년이나 평범한 삶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재벌과 기업가의 등장은 너무나 당연시된다는 점이다. 민언련은 "회사원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조차 재벌과 기업가 직군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청년을 다룬다 해도 재벌 2세나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다룬 아류작들이 많이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한국 드라마가 갖는 한계를 꼬집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2017년 조사에서도 비슷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2017년 6월 드라마 49편의 주요 등장인물 119명의 직업을 분석했는데, 2019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비중이 높은 직업군은 재벌과 기업가였다.


이는 지나치게 고소득층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민언련 조사에 따르면 의료인, 정치인, 금융업 종사자 등 통상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전문직 등장인물의 비율은 46%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회사원, 학생, 구직자, 무직 등의 직업군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특히 민언련이 조사대상으로 삼은 110편 가운데 고소득 전문직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는 총 9개 작품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드라마들이 화려한 직업, 화려한 생활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대리만족, 선망의 대상을 향한 욕구를 채워주는데 집착하고 있다"며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소수 부유층이나 극단적인 조건에 놓여 있는 인물을 등장시킬 때 조금 더 극적인 반전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한국 사회의 단편적인 모습에 치중한다면, 사람들은 감동과 공감보다 허탈함과 그릇된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 사회가 유독 물질만능주의, 성공지상주의, 소비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드라마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드라마가 제대로 사회상을 반영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메시지를 전해줄 때 이 사회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드라마 제작사들이 시청률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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