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16조9968조…2005년 말 이후 13년여 만에 최소
글로벌 수출 침체에 위축…'무역 윤활유 제동' 돈맥경화 우려
올해 상반기 16조9968조…2005년 말 이후 13년여 만에 최소
글로벌 수출 침체에 위축…'무역 윤활유 제동' 돈맥경화 우려
국내 은행들이 수출 기업들에게 내준 신용장 규모가 1년 새 2조원 넘게 줄면서 13년여 만에 가장 적은 수준까지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장은 기업들이 어디서든 자금을 융통할 수 있도록 은행들이 제공하는 일종의 보증서로, 원활한 무역 활동을 위해 필수적인 윤활유다. 그런데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이처럼 은행들이 신용장 발급에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서면서,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 속 근심이 커진 우리 기업들을 돈맥경화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19개 은행들이 보유한 미확정 지급보증 가운데 신용장 개설과 관련된 금액은 총 16조9968억원으로 전년 동기(19조704억원) 대비 10.9%(2조736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장은 각종 무역 거래 등을 통해 자금을 차입하려는 기업이 담보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은행이 발급해주는 지급보증의 일종이다. 이에 따라 무역 거래에 문제가 생기거나 기업이 부도를 냈을 경우 지급보증을 한 은행이 돈을 변제하게 된다.
은행들의 신용장 발급이 16조원 대로 축소된 것은 2005년 말(16조3346억원) 이후 처음으로, 54분기 만에 최소 기록이다. 은행들의 미확정 지급보증 중 신용장 개설 액수는 2006년 들어 18조원 대로 올라선 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줄곧 20~30조원 선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2016년부터 다시 10조원 대로 내려앉더니 올해 들어 감소세가 눈에 띄게 가팔라지고 있다.
주요 은행별로 보면 4대 시중은행에서만 신용장 제공이 1조원 넘게 줄었다. KB국민은행의 미확정 지급보증 신용장 개설 금액은 지난 6월 말 2조630억원으로 1년 전(2조3593억원)보다 12.6%(2963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 역시 2조8076억원에서 2조3449억원으로, KEB하나은행도 3조7398억원에서 3조1339억원으로 각각 16.5%(4627억원)와 16.2%(6059억원)씩 신용장 규모가 줄었다. 우리은행의 해당 액수도 3조5491억원에서 3조4949억원으로 1.5%(542억원) 감소했다.
이렇게 은행들이 신용장 제공을 꺼리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는 극도의 수출 부진이 꼽힌다. 무역 기업들에 대한 보증 역할을 하는 신용장의 특성 상 수출 악화는 은행들에게 위험 요소일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수출은 10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무역 위축과 반도체 단가 하락 등의 여파로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 수출은 447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1.7%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더해 이미 대출을 받아간 기업들이 예전보다 돈을 갚는데 힘겨워하고 있는 현실은 은행들의 긴장감을 한층 키우는 대목 중 하나다. 올해 상반기 말 신한·국민·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들이 내준 기업대출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금액은 1조4156억원으로 전년 말(1조2483억원) 대비 13.4%(1673억원) 늘었다. 이에 따른 기업대출 연체율도 같은 기간 0.26%에서 0.28%로 0.02%포인트 악화됐다.
문제는 수출 부진이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 분쟁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에 더해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 베트남의 경기까지 둔화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은행들이 신용장 제공을 더 주저하게 되면 기업들은 자금을 돌리기 어려워지게 되고, 이는 다시 기업들의 수출 악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은 올해 초부터 계속된 수출 경기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연말까지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국내 975개 수출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는 94.9로 전 분기(99.5)보다 4.6포인트 하락했다. 이 수치가 100을 밑돌면 향후 수출 여건이 지금보다 나빠질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신용장을 찾는 이들 자체가 줄고 있는 추세도 있지만, 당분간 수출 경기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관리를 강화해야 하는 은행들 입장에서도 신용장과 같은 지급보증을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하지만 안 그래도 경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수출 기업들을 설상가상의 위기로 내몰지 않도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수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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